북한의 두 얼굴은 불치병인가 보다. 70년대 초 남북회담 당시 해빙무드가 조성되는 동안 북한은 뒤에서 남침용 땅굴을 팠던 기억이 생생하다. 지난 6월에는 소 5백마리를 몰고 방북한 정주영(鄭周永)씨에 대한 선물(?)로 속초 앞바다에 무장 잠수정을 보냈다. 이번에는 금강산 관광객 1천3백여명이 첫 관광선을 타고 북한에 가 있는 사이 강화도에 간첩선을 침투시키려 했다.
▼대북(對北) 경계태세가 허술해진 듯하면 어김없이 비수를 들이대는 게 북한이다. 그것도 예상하지 못한 허(虛)를 찌르는 수법이다. 험준한 산과 땅속 공중, 동해안 서해안을 가리지 않는다. 그래서 평화무드가 고조될수록 한편에선 경각심을 더욱 조여야 한다는 것이 우리에게 남겨진 교훈이다. 이번 간첩선은 특히 북의 핵의혹 시설에 대한 사찰압력 및 한미정상회담과 맞물린 미묘한 시기에 출현해 저의가 더욱 궁금하다.
▼북의 두 얼굴은 원래 그렇다 치고 우리 정부와 군의 대비태세는 정말 실망스럽다. 간첩선이 강화도에 닿기 직전 야간감시장비로 포착한 것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군작전 최고지휘부인 합참에 약 2시간 뒤에야 첫 상황이 보고됐다. 최고의 경계태세인 ‘진돗개 하나’가 발령된 것은 그로부터 또 한시간쯤 뒤였다. 이런 늑장 초동태세로 육해공 합동작전이 먹혀들 리 없다. 간첩선은 발견된 지 4시간만에 북쪽으로 사라졌다.
▼국방부는 나포작전의 실패를 얕은 수심으로 인한 기동성 제약과 캄캄한 야간상황 등 자연적 요인 탓으로 돌렸다. 어떤 악조건 하에서도 완벽한 안보를 유지해야 할 책무를 도외시한 변명이다. 북의 도발을 축소평가하려는 듯한 관계자들의 태도와 최고 통수권자인 대통령에게 12시간만에야 상황을 보고한 안이함도 국민을 불안하게 한다.
육정수sooy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