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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정몽준/2002년 월드컵과 동서화합

입력 | 1998-11-21 19:58:00


최근 ‘IMF위기’다음으로 공사석에서 자주 듣는 말이 동서화합이란 용어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방중(訪中)직전인 10일 청와대에서 열린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와의 여야총재회담에서도 ‘지역갈등의 극복과 국민화합을 위해 공동으로 노력하며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제도적 장치를 강구한다’는 합의내용이 발표됐다.

여야지도자간의 회담에서 공식의제로 거론될 만큼 지역갈등 극복문제가 우리가 안고 있는 심각한 현안이라는 얘기일 것이다.

각종 동서화합행사들도 ‘국민의 정부’ 출범후 봇물을 이루고 있다.

▼공평한 인사정책 중요▼

특히 광주 목포 전주 등의 호남지역 도시들은 자매결연을 원하는 영남쪽 도시들이 워낙 많아 목하 고민 중이라니 격세지감을 느낄 정도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구호나 행사만으로 동서화합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점에 있다.

여야총재회담에서 합의된 대로 제도적인 ‘틀’이 갖춰지지 않는 한 공염불에 그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우선 중요한 것은 경제발전의 혜택이 모든 지역에 공평하게 돌아가도록 하고 인재등용에 있어서도 출신지역에 따라 이익이나 불이익을 주는 일이 없도록 균형적인 발전을 이루어야 할 것이다.

균형이란 ‘실제적 운용’이 결정적인 중요성을 갖고 있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정권을 담당한 국민정부쪽에 더 큰 짐이 지워져 있다는 게 나의 견해다.

다만 균형과 공평은 매우 상대적인 개념이라는데 이 문제에 접근하는 어려움이 있다.

이런 점에서 인사편중 문제 등 그동안 지역감정 문제와 관련해 불거졌던 쟁점에 다른 어떤 문제보다도 반발하는 측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정권측의 설득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균형적 발전 못지 않게 동서화합에 중요한 것은 정치개혁이다. 망국적 지역감정이 그동안 어떻게 정치세력들에 의해 조장돼왔지는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다.

실제로 6공시절 중대선거구제가 논의됐을 당시 여야는 특정지역의 ‘잠식’과 ‘고수’라는 정치적 이유를 속셈에 깔고 대립한 끝에 결국 정치개혁을 무산시킨 일도 있다.

아무튼 지역감정에 호소해야 선거에서 표를 얻을 수 있는 지금같은 지역정당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앞으로도 지역대결 현상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과거와 같은 정파적 이해가 전제되지 않은, ‘열린 논의’를 통한 정치개혁이 필요한 때다.

물론 가장 이상적인 처방은 정치권이 이념중심의 정당구조로 바뀌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최장집(崔章集)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장의 논문을 둘러싼 논란에서도 볼 수 있듯이 한국은 남북대결이란 특수한 상황때문에 이념적 논쟁의 폭이 매우 좁은 사회다.

보수와 진보세력의 정치적 분화가 이뤄져 있지 않은 상황 속에서 운위되는 보수대연합이니 진보대연합이니 하는 정계개편논의도 결국 또 다른 지역정당 구조를 만들어낼 가능성만 높을 뿐이다.

지역감정이란 곪은 환부와도 같아서 섣불리 만지면 만질수록 자꾸 커지고 증세가 심각해지는 측면이 크다.

그렇다면 온국민이 다함께 몰두할 수 있는 이상을 국민에게 심어주어 지역감정을 ‘뛰어 넘는’것이 어쩌면 가장 효과적인 치유방법이 될 것이란 생각을 해본다.

▼국민마음 모으려면…▼

애국심이든, 잘 살아보자는 의지든, 통일에의 열망이든, 아니면 스포츠에 대한 열정조차도 사람들을 한데 묶는 데에는 더없이 좋은 수단이 된다.

세계의 온갖 잡다한 인종들이 모인 미국이 ‘거대한 용광로’가 될 수 있었던 데는 인종이나 출신국적에 관계없이 누구나 열심히 노력하면 부자나 유명인사가 될 수 있다는 ‘아메리칸 드림’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경제위기나 2002년 월드컵의 개최도 동서화합을 위한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본다.

경제위기의 극복을 위해, 또 전 세계인의 축제를 함께 준비하며 국민의 마음이 하나로 모아지고 공동운명체라는 생각이 사람들 마음속에 자리잡을 때 지역감정의 응어리가 풀리고 화합의 분위기도 조성될 수 있을 것이다.

서양속담에 ‘공동의 작업은 적도 친구로 만든다’는 말이 있다. 오늘 우리에게 유용한 지혜가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다.

정몽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