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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IISS전략문제논평]생활고 러軍 정치엔 무관심

입력 | 1998-11-21 19:58:00


동아일보는 국제정세와 전략문제에 관해 세계적인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영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와의 독점계약으로 IISS의 간행물 전략문제논평(Strategic Comments)중 ‘절망에 빠진 러시아군대’를 요약해 소개한다.

91년 8월 러시아에서 있었던 공산주의자의 쿠데타 기도는 군부가 움직이지 않아 실패로 끝났다.

93년 10월 보수주의자들의 의사당 점거사건 때는 군부의 중립으로 보리스 옐친 대통령이 실각할 위기까지 갔지만 막판에 진압에 나선 소수의 특수부대 덕분에 겨우 정권이 유지됐다.

이같은 러시아 군의 정치적 무관심은 92년 옐친이 군통수권을 인수받은 후 장병들이 겪은 고통을 고려할 때 예상밖의 것이다.

지난 7년간 러시아군은 재정난으로 상당한 고통을 겪었다. 이는 96년 체첸과의 전쟁에서 패배함으로써 확연히 드러났다.

러시아는 최근 외환위기를 겪기 직전까지만해도 2005년을 목표로 군 개혁을 추진하고 있었다. 획기적인 군 감축이 핵심내용이다. 그러나 장교들의 대대적인 전역과 그에 따르는 비용을 필요로 하는 군 개혁은 정부재정 붕괴로 아예 불가능한 상태다. 9월의 경우 중앙정부의 총 세수가 7억달러에도 못미칠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군 예산의 절반도 충당하지 못하는 규모다.

군대의 식량공급도 엉망이다. 빵과 감자를 구매하기 위한 계약은 했지만 보급이 되지 않고 있다. 예전에는 외상으로라도 구할 수 있었지만 요즘은 어림없다. 인플레가 극심하기 때문에 공급업자들이 선금을 주지 않으면 물건을 내놓지 않기 때문이다.

모스크바 주변에 배치된 병사들까지 식량을 구하기 위해 집단농장으로 내려가 일을 하고 있다. 이 때문에 간혹 장병들의 시위가 있었지만 주제는 급여 문제에 집중된다. 그래도 군대는 여전히 정치에 무관심하다.

그 이유는 △군부의 정치 불개입 전통 △구소련 붕괴직전 병력이 시위진압에 동원됐을 때마다 군부만 책임을 진 사례 △사단들간의 분산된 명령체계 및 이해관계 △장성들은 하급장교와는 달리 부정축재가 가능하기 때문 등이다. 따라서 당장 군부의 저항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조사에 따르면 장교들은 비록 지금 상황이 어렵지만 군대를 떠나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장교들로만 구성된 소규모의 엘리트부대가 경제적인 인센티브가 충분히 있을 경우 쿠데타를 기도하는 것은 생각할 수 있다. 93년 10월의 경우처럼.

이같은 위험은 경제침체가 끝나거나 군부개혁이 성공할 전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상당기간 지속될 전망이다.

현재 군 문제는 완전히 방치된 상태다. 누구도 성난 장병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싫은 소리를 하기 힘든 상황이며 따라서 군은 점점 썩고 있다.

분노한 군부의 존재는 민주주의의 발전에도 좋지 않다.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중앙정부가 완전히 붕괴될 경우 군부는 국가를 지탱하는 유일한 조직이 될 것이다. 그런 상황이 쉽게 올 것 같지는 않지만 러시아의 끝없이 침체하는 경제를 보면 함부로 자신할 일도 아니다.

〈정리〓허승호기자〉tiger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