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0일 새벽 강화도 연안에 해상침투해 온 북한 간첩선 나포실패 사건과 관련하여 24일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국방장관을 질책한 후 그 지역 육군 군단장과 해병 사단장, 연대장, 대대장 그리고 그 해역의 해군 함대 사령관, 전대장이 줄줄이 문책당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는 군당국이 언론매체들 나름의 분석 및 비판과 대통령의 질책에 과도한 반응을 보인 것으로 생각된다.
언론의 분석과 비판에는 옳은 것도 있고 옳지 않은 것도 있을 수 있는 만큼 ‘높은 분’의 정확한 상황인식을 위하여 ‘용기있는’보고와 설득이 있었더라면 사정은 달라졌을 수도 있을 터인데 말이다.
▼ 해병사기 꺾어선 안돼 ▼
여하튼 해병대의 전투력을 이번에 간첩선 놓친 것만으로 평가절하해서는 안되며 군의 사기를 떨어뜨려서도 안된다. 그래도 해병대는 여전히 해병대다.
북한은 우리 해병대를 매우 두려워하고 있다. 많은 자원을 투입하여 이루어 놓은 북한 해안의 방어시설들이 이를 말해준다.
저들이 6·25전쟁때 낙동강까지 밀고 내려왔으나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허를 찔려 한반도를 무력으로 적화통일하겠다던 ‘김일성의 역사적 결단’이 헛수고가 되어버린 치명적 실패는 저들이 더 잘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병대는 상륙작전을 전문으로 하는 특수군이다. 그리고 가장 혹독한 훈련과정에 도전하여 이겨낸 젊은이들이 해병대원이다.
기질적으로 이들은 매우 용감하고 ‘지키기’보다 ‘쳐부수기’를 좋아하며 위험을 회피하지 않고 돌파한다. 단결력이 남달리 강하며 명령에 절대로 복종한다. 이러한 특성의 ‘지원병’들로 구성되고 단련되었기 때문에 해병대는 강하다.
해병대가 후방 해안에 ‘집결’해 있음은 언제든지 배를 타고 상륙작전할 태세를 갖추고 있음을 뜻한다. 반대로 이런 부대가 ‘분산’하여 해안 및 강안 경계임무를 수행함은, 해병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상륙작전 준비태세와는 거리가 먼) 임무에 묶여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해병대는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전략차원에서 북한에 두려움을 느끼게 한다.
우리의 1개 해병사단이 북한군의 육안관측이 가능한 강화도 일원에 ‘분산 배치’되어 경계임무에 묶여있는 한 북한의 서해안에 대한 우리 해병대의 상륙작전을 저들은 염려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군수뇌부는 해병대가 전략부대임을 수십년동안 잊고 지내온 것 같다. 이는 잘못이다.
이번 사건으로 그 지역 및 해역지휘관들이 집단으로 문책당하여 군의 사기가 떨어지게 한 일은 삼갔어야 했다. 과오를 범한 대대장을 문책하면 될 것을 이렇게 지나치게 문책범위를 확대한 것은 부당하기 때문이다.
지난 여름 동해안 사건에서도 그러했듯이 문책은 ‘위’를 보호하기 위해 ‘아래’를 희생시키는 듯한 인상을 주어서는 안되며 그 대상 범위와 경중에 있어 타당하고 부대 지휘 통솔에 긍정적 영향을 기대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해병대는 상륙(공격)전문부대이지 간첩 잡는 전문가 집단은 아니다. 상륙작전을 잘 하도록 육성된 부대이지 생쥐처럼 숨어 들어오는 간첩을 잡도록 훈련된 기관은 아니다. 그런데도 이들은 이번에 해상침투해오는 간첩선을 발견하여 저들이 침투에 실패하고 북한으로 달아났으니 경계하던 우리 해병이 ‘반(半)성공’은 한 셈이 아닌가.
다만 현지 대대장의 지휘가 잘못되어 간첩들과 그 선박을 일망타진하지 못한 것이 분하지만 거기에 경계 태만은 없었다. 그런데도 이렇게 광범위하게 문책을 단행하면 군의 사기저하와 함께 일선 지휘관들이 위축되어 어쩔 수 없이 부대를 북한의 전면남침에 대비한‘방어배치’에서 간첩침투나 막아 내려는 ‘경계배치’로 조정하게 되고 훈련 내용도 그렇게 바뀔 위험이 있다.
▼ 北측 교란전술 경계를 ▼
만약 그렇게 되면 이는 큰 재앙을 예고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게 되면 부대들이 북한의 전면남침때 즉각 방어태세로 돌아와 방어기능을 발휘하기 곤란하기 때문이다.
노회한 북한당국자들이 우리 군의 이러한 변화를 바라고 그렇게 유도할 가능성도 있음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저들은 이제 우리 일선 지휘관들을 쉽게 해임시키고 군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요령을 터득했음직하다. 간첩선만 우리 연안에 얼씬거리다 돌아가면 우리 지휘관들이 줄줄이 문책당할 터이니까. 북한 당국자들만 좋아할 지휘관 ‘무작정 문책’은 삼가야 한다. 그리고 해병대를 그 기능에 맞게 운영해야 한다.
민병돈(전 육군사관학교장·예비역 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