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에이즈 치료제 개발 경쟁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주인공은 올해 30세인 재미 과학자 전태욱(全泰昱·30)박사.현재 미 국립보건원(NIH)에서 포스트닥터 과정을 밟고 있는 그가 에이즈 바이러스 HIV에 감염된 비활동성 T세포를 죽일 수 있는 가능성을 세계 최초로 입증함으로써 세계 의학계의 숙원인 에이즈 치료제 개발에 대한 희망이 되살아났다.미국의 CNN방송과 유에스에이투데이지는 지난달 NIH의 발표를 인용, 알레르기와 감염질병 연구소의 전박사팀이 ‘인터류킨 2(IL2)’라는 시약을 14명의 에이즈환자들에게 주사한 결과 놀랄만한 효험이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NIH는 3명의 에이즈 환자에게서 전혀 HIV가 나타나지 않았으며 나머지 환자들도 큰 효과를 본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세계 에이즈의 날인 1일 전박사로부터 에이즈 정복 가능성에 대한 견해를 들었다.》
―IL2는 어떻게 HIV에 감염된 T세포를 죽이는가.
“비활동성 T세포를 활발히 움직여 바이러스를 많이 배출하도록 자극하는 것이 핵심이다. 비활동성 T세포가 과다하게 바이러스를 만들어내면 스스로 자신이 고사하게 되는 원리다.”
―비활동성 T세포가 발견되지 않으면 HIV가 완전히 사라진 것으로 볼 수 있는가.
“아직은 이르다. 다음주부터 환자들에게 IL2 투약을 중단해보면 알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에이즈치료약이 많이 나왔지만 복용을 중단하면 다시 재발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앞으로 최소한 한달 정도 환자들을 지켜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또 우리가 모르는 인체에, 예를 들면 뇌 속 어딘가에 바이러스가 숨어있을 수 있다. 이때문에 완전박멸을 주장하기는 아직 어렵다.”
2년전까지만 해도 전세계 에이즈학계의 주인공은 중국계 미국인 과학자 데이비드 호였다. 그가 만든 에이즈 치료제는 3가지 물질을 섞어 만든 이른바 ‘칵테일 치료제’. ‘칵테일’을 복용한 에이즈 환자들마다 HIV가 사라지는 놀라운 결과가 나오자 호박사는 2,3년내에 에이즈가 완전 치유될 수 있을 것으로 호언했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96년 12월 송년호에서 그를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그러나 호박사의 치료방법은 신기루 같은 것이었다. 2년이 지난 지금 그의 약을 복용한 에이즈 환자 가운데 치유된 사람은 한 사람도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바이러스는 약을 피해 T세포에 숨어있었을 뿐이었다.
호박사의 이론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HIV의 잠복 사실을 밝혀낸 사람이 전박사였다. 그가 이같은 내용을 지난해 5월과 11월 권위있는 학술지인 네이처와 PNAS에 발표하자 학계가 발칵 뒤집혔다. 에이즈치료제 개발은 원점으로 돌아갔다.
전박사는 세계적인 에이즈 과학자로 주목받고 있지만 서울대에 두번이나 도전했다가 고배를 마신 쓰라린 경험이 있다. 그는 서울대 입학을 포기하고 미국으로 건너와 캘리포니아주립대(샌 버나디노 분교)를 수석 졸업한 뒤 존스 홉킨스 의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본인 스스로 “한국에서 대학 입시에 실패한 것이 오히려 내게 행운이었다”고 말했다.
미혼인 그는 “결혼해야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글쎄요”라고 대답했다. 연구가 더 중요하다는 말이었다.
〈워싱턴〓홍은택특파원〉euntack@donga.com
▼ 서울대 최강원(崔康元·감염내과)교수의 말 ▼
IL2를 에이즈 환자의 몸에 투약해 인체내에 숨어있는 바이러스를 활성화시킨 후 죽이는 전태욱박사의 새로운 에이즈 치료법에 대한 연구는 세계 학계에서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전박사는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이 분야에서 가장 손꼽히는 과학자로 알려져 있다.
실험결과는 아직 중간 단계로 보이나 최종적으로 성공적인 결과가 나올 경우 에이즈 치료에 하나의 이정표를 세우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