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건국 범국민추진위원회’가 정부개혁과 민원행정개선 등에 대한 관여를 추진하고 있음이 3일자 본보 보도를 통해 알려지자 제2건국위는 물론이고 청와대 행정자치부 등 관계부처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관계부처 장관과 청와대 수석비서관 등이 뛰어다니며 본보 보도에 대한 해명에 나섰다. 또 제2건국위가 1일 관계부처에 보낸 ‘(제2건국위)정부혁신태스크포스(특별대책팀) 향후 작업계획’ 공문이 유출된 경위에 대한 조사도 벌어졌다.
제2건국위는 본보 보도와 관련해 즉각 해명자료를 냈다가 이 자료를 수정해 다시 내는 등 자체 입장정리에도 혼선을 드러냈다.
제2건국위는 수정된 해명자료를 통해 “정부혁신태스크포스의 향후작업계획에 관한 공문은 순수한 내부자료”라며 “감사원 등의 구조개혁 등 작업분야는 태스크포스안으로 결정되더라도 기획단 상임위원회 공동위원장회의를 거쳐 대통령에게 보고해 추진여부를 확정해야 하므로 현단계에서는 제2건국위의 공식의견과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제2건국위는 “기획예산위원회 및 행정자치부와의 역할분담과 관련해 제2건국위 태스크포스에 기획예산위와 행자부측도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어 의견조율을 거친 것으로 작업원칙과 기본방향을 정한 것”이라고 밝혔다.
행자부는 제2건국위 기획단장을 맡고 있는 김정길(金正吉)장관이 “태스크포스 의견은 단순한 아이디어”라고 해명한 것과 달리 본보 가판이 발행된 2일 밤 늦게까지 비상근무를 할 정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그런 가운데 행자부 기획예산위 제2건국위 등의 관계자들은 서로 문서유출의 책임을 떠넘기기에 바빴다.
제2건국위와 청와대 행자부 등의 해명과 관계부처간의 문서유출 책임공방은 오히려 제2건국위의 역할에 관한 의혹을 키우는 인상을 주고 있다. 단순한 아이디어모음집이라면 문서유출 자체가 별다른 문제가 될 까닭이 없으며 장관과 청와대수석비서관들까지 신문사를 찾아다니며 해명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혁신태스크포스 향후 작업계획’공문 유출을 계기로 제2건국위의 조직과 기능의 문제점을 점검해본다.
▼정당조직을 방불케 한다〓제2건국위는 중앙 단위에서 4백명을 웃도는 위원을 두고 있다. 각 지방 자치단체에도 중앙과 동일한 형식으로 제2건국위가 설치된다. 다만 자치단체의 규모에 맞게 인원이 조정된다. 시도의 경우 1백∼2백명, 시군구는 50∼1백명으로 위원회를 구성할 예정이다. 이 계산대로라면 전국적으로 최소 1만3천여명, 최대 2만6천여명의 위원을 두게 된다.
게다가 중앙은 부처별로, 지방은 자치단체별로 제2건국운동을 정부기관의 업무에 연결시키기 위한 추진반을 설치 운영하게 된다. 제2건국위 조직을 전국단위로 확대하고 이 조직들과 정부기관과의 유기적인 협력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한다는 취지다.
제2건국위 중앙조직의 경우 4백명이 넘는 위원이 있지만 실질적인 업무는 기획단 이하의 조직에서 추진되고 3백여명은 1년에 한두차례 회의에만 참석한다.
문제가 된 정부혁신태스크포스는 제2건국위 중앙조직 안에 있는 11개팀 가운데 하나다. 나머지 10개팀도 정부혁신태스크포스와 유사한 방식으로 업무를 추진중이어서 제2건국위 조직이 또 하나의 행정부가 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특히 각 부처의 추진반을 통해 국가행정력을 수시로 동원할 수 있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이에 대해 일부 전문가들은 “순수한 대통령 자문기구라면 무엇 때문에 그렇게 방대한 지방조직까지 필요한 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박원순(朴元淳)변호사는 “제2건국위는 민간 중심의 위원회로 기능하는 게 옳다고 본다”며 “그러려면 몸집이 가벼워야 하는데 현재의 조직구성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기능도 웬만한 권력기관을 뛰어넘는다〓박지원(朴智元)청와대대변인은 “제2건국위는 제2의 건국에 필요한 제도 의식 생활개혁 등 3대 개혁운동을 추진하거나 민간부문 운동을 지원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제2건국위는 조직의 성격을 명확하게 규정하지 못하고 있다. 목표달성을 위해 업무를 어떻게 나누고 또 그 추진주체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분명한 정리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
11개팀중 하나인 정부혁신태스크포스가 기획예산위와 행자부 등과의 업무분담을 추진했다는 사실 자체가 제2건국위의 기능에 대한 의혹을 불러 일으킨다.
또 대통령령에 근거한 대통령 자문기구가 정부조직법에 의해 운영되는 정부부처의 개혁문제를 다루겠다는 발상은 위헌적일 뿐만 아니라 위험하다는 지적이 많다. 기획예산위와 행자부는 정부조직법에 따라 권한을 행사하지만 제2건국위는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제2건국위측은 개혁업무를 실제 추진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대통령에 개혁방안을 건의하겠다는 의미라고 해명하고 있다. 하지만 개혁추진 관련부처와 업무분담까지 하는 마당에 ‘건의’냐 ‘추진’이냐를 따지는 것은 말장난에 불과한 것으로 지적된다.
태스크포스의 역할 자체가 정부혁신작업에 있는 만큼 직접이든 간접이든 정부개혁에 관여할 것은 분명하다는 분석이다. 제2건국위 설치령은 그 목적을 ‘국정전반의 개혁과 범국민운동의 효율적 추진’에 두고 있고 추진위 기획단은 국민의 의식 및 생활개혁과 함께 정부개혁을 중요과제로 삼고 있다.
이런 가운데 11개팀이 본격 가동되면 어떤 기능을 얼마만큼 하게될지 미지수인 상황이다.
이한구(李漢久)대우경제연구소 사장은 “제2건국위가 공무원의 의식교육을 한다는데 누가 누구를 교육하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의식교육을 한다고 공무원의식이 바뀌겠는가. 제2건국위가 또다른 비용 요인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순수민간운동단체로 거듭나야 한다〓연세대 허영(許營·헌법학)교수는 “사회영역의 도덕적인 재무장은 사회지도층부터 솔선수범하는 가운데 여러 시민운동단체들의 자율적인 사회운동의 몫으로 남겨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사회영역에까지 정부가 관여한다면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고 말했다.
정부가 국민의 의식과 생활을 바꿔나가겠다는 것 자체가 위험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또한 대통령중심제 하에서 청와대가 주도하는 국민운동이 비정치적일 수는 없다는 분석이다.
서울시립대 박경효(朴慶孝)교수는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제2건국위가 정부 내에서 파워게임을 벌일 가능성이 높다. 존립기반을 만들기 위해 활동을 해야 하고 이 과정에서 기획예산위 등과 관할권 다툼을 일으킬 수 있다. 활동영역을 의식개혁으로 국한한다고 하더라도 제도와 문화를 떼어놓고 일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활동의 구심점이 흐려지고 기획예산위 등과 업무중복 및 갈등을 빚을 것으로 우려된다.”
정부혁신태스크포스가 제기한 추진과제들은 이미 순수성을 의심하기에 충분하다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제2건국위는 기능과 역할을 분명히 밝히고 모든 논의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이한구사장은 “제2건국위가 지금처럼 활동한다면 단순한 실업자구제대책밖에 안된다. 단기실적에 급급하다가 또다른 실수를 되풀이할 가능성이 높다”고 걱정했다.
〈임규진기자〉mhjh2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