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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간담회 의미]재벌시대 막내린다

입력 | 1998-12-06 19:21:00


고속성장의 중심축으로 40여년동안 한국경제를 이끌어온 재벌체제의 종막(終幕)이 임박했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주재하는 청와대 정재계 간담회를 계기로 현대 삼성 등 대재벌 경영의 폐해를 상징해온 이른바 선단(船團)식 경영체제의 종언이 정식으로 천명되고 기존 중복과잉 사업부문의 정리계획도 확정된다. 청와대 간담회에서 다룰 의제는 △김대통령과 5대 그룹간 재벌개혁 5개항 이행사항 점검 △7개 업종 빅딜 추진계획 확정 △그룹별 구조조정계획 등 크게 세가지.

정부와 재계는 청와대회동 전까지 완벽한 합의를 이룬다는 대전제에 따라 각자 구상한 합의문 초안을 교환하고 정부―재계―채권단간 막판 ‘삼각조율’을 벌였다.

▼한국형 재벌체제가 사라진다〓정부 재벌개혁의 궁극적 목표는 ‘대마불사(大馬不死)형 재벌체제는 해체하되 재벌계열사들의 경쟁력은 높인다’는 데 맞춰져 있다. 연초 김대중대통령당선자와 5대 그룹 총수간 5개 개혁합의안은 이같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행동강령의 의미를 담고 있다.

5개항 중 △경영투명성 제고 △상호지보해소 △재무구조 혁신 △지배주주책임강화 등 4개항은 큰 잡음없이 추진중이다. 경영투명성을 높일 결합재무제표 작성기준이 마련돼 2000년 7월 시행되고 2000년 3월 상호지보 완전해소 일정에 맞춰 올해 말까지 이업종(異業種)간 상호지보가 우선 해소된다. 우량계열사가 부실사를 먹여살렸던 재벌 관행이 사라지게 되는 셈.

부채비율 400%대의 위험한 재무구조를 끌고왔던 5대 그룹들도 외자유치 등으로 부채를 꾸준히 갚아나가 연말 300%대, 내년쯤에는 200%대로 부채비율을 낮춰갈 방침. 3∼4%대의 개인 지분을 근거로 전횡을 일삼던 총수들은 △지배주주의 이사등재 △비서실 해체 △2000년 집단소송제 도입 △경영실패시 대주주 퇴진 등의 원칙이 도입되면서 비등해진 소액주주 권한에 입지가 급속히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

▼‘슈퍼빅딜’과 소그룹내 통합으로 ‘몸통’줄인다〓5개 합의사항 중 가장 지지부진했던 ‘핵심사업 위주의 사업구조조정’은 그룹간 막판 빅딜로 물꼬를 텄다. 삼성자동차와 대우전자간 슈퍼빅딜이 대표적 케이스.

두 그룹은 자동차―전자사업의 교환방침에는 합의했으나 등가(等價)를 보장할 부수적인 거래조건에 합의하지 못해 슈퍼빅딜을 기정사실화하는 것을 주저하고 있다. 재계 소식통은 “대우그룹이 최근 대우통신의 가전부문을 떼어내 전자와 함께 넘겨주는 방안을 새롭게 모색하고 있다”고 전했다.

현대와 LG그룹이 막판 신경전을 벌이는 반도체 통합협상에도 빅딜 가능성이 급부상하고 있다. 두 그룹이 실사 컨설팅기관인 미국 ADL과 아직 실사계약도 체결하지 못해 당초 약속한 ‘24일 경영주체 선정’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지적 때문이다.

이와 함께 5대 그룹은 주채권은행에 3∼5개의 주력업종을 제시해 소그룹별 통합작업을 가속화할 예정. 37∼63개의 계열사 수는 우량 15∼25개 정도로 대거 축소된다. 다만 재계는 “무역 건설 유통 등을 서비스업으로 분류해줄 것”을 요청해 정부와 막판 줄다리기를 벌이고 있다.

▼한국의 간판산업 ‘이원화체제’로 재편된다〓5대 그룹간 사업교환과 부실사 퇴출계획이 확정되면 국내 산업계는 복수 경쟁체제가 급격히 허물어질 전망. 7월 1차 정재계간담회에서 합의한 양사체제가 현실화되는 것이다.

20여년 가량 3사체제를 유지해온 자동차가 현대―대우의 구도로 바뀌고 반도체도 삼성―LG(혹은 현대)체제가 들어선다. 삼성 LG 대우가 치열한 내수시장 경쟁을 벌였던 가전산업도 삼성 LG 양자대결 구도로 압축된다.

이밖에 유화 에너지 산업도 LG와 SK의 양강(兩强)체제가 확고해지고 항공 철도차량 등 중공업 분야는 당분간 독점체제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박래정·박현진기자〉eco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