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인권단체인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에 따르면 76년3월 아르헨티나 군사쿠데타 이후 2년여동안 이 나라 시민 1만5천명 이상이 실종됐다. 인신보호영장 제출건수를 기준으로 하면 2만∼3만명을 헤아린다. 상당수가 불법체포돼 모진 고문을 받고 쥐도 새도 모르게 처형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진상이 시원하게 드러난 사례는 드물다. 인권실태보고서 ‘눈카 마스’는 마취제 주사 후 비행기로 납치, 대서양에 빠뜨려 죽인 사건도 있었다고 전한다.
▼피노체트 군사독재 치하의 칠레에서도 원인불명의 사망 실종자가 4천명이나 된다고 한다. 80년7월15일 육군정보학교장 베르가라 중령 피살을 계기로 더욱 기승을 부렸다. 베르가라는 출근도중 전력회사 근로자 복장을 한 괴한 4명에 의해 살해됐다. 피노체트 당시 대통령은 치안기관을 총동원해 범인을 찾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나흘 후 모든 국가안보 사건에 관해 일체 입을 막는 포고령을 내렸다.
▼구소련과 동구권 북한 등지의 인권실태는 말할 것도 없다.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나라에서조차 국가기관에 의한 실종과 의문사 사건이 적지 않다는 것은 큰 불행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었다. 악명 높던 중앙정보부와 경찰의 대공분실 등이 많은 의심을 받고 있다. 서울대생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도 언론의 끈질긴 취재보도가 없었다면 묻혔을지 모른다.
▼정부 여당이 곧 설치될 인권위원회에 의문사사건 진상조사기구를 두기로 했다니 세월의 흐름을 실감한다. 의문사사건은 주로 국가보안법 적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 점에서 국가보안법 제정 50주년(12월1일), 그리고 세계인권선언 50주년(12월10일)을 맞아 뜻이 깊다. 그러나 의문사를 주장하는 사건이 한두건이 아닐텐데 그것도 고민이다.
육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