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사설]판문점까지 이 지경인가?

입력 | 1998-12-09 19:43:00


판문점 경비부대 병사들이 지휘계통에 보고없이 북한군과 접촉해 온 것으로 드러나 충격이다. 어떻게 이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는지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도대체 이들이 어느 나라 군인인가. 한 부소대장은 작년 7월부터 12월까지 북한군 초소에 30여차례나 다녀왔다. 그는 부하병사에게 감시 카메라장치를 돌려놓으라고 지시하고 몰래 다녀오기도 했다. 심지어 김정일(金正日)생일축하 화분을 전달한 병사까지 있었다는 믿기지 않는 귀순자 전언도 들린다.

만일 이런 일들이 북측의 치밀한 포섭공작 결과라면 참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북한군의 대남 적화통일전략과 직접 맞닥뜨리는 최전방에서 우리 국군이 이처럼 흐트러진 자세를 드러낸 것은 국방안보의 최후보루를 의심받게 한다는 점에서 할 말을 잊는다. 단순히 기강 차원을 넘어 국가와 국민을 배반한 행위다. 북측의 오판을 부를 수도 있는 위중한 사태라고 보는 이유가 여기 있다. 공동경비구역의 북한군 중에는 국군장병에게 북한체제를 선전하고 포섭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특수 심리전요원들도 있다. 이렇게 포섭된 장병이 제대한 후엔 접선공작 대상으로까지 삼는다니 참으로 경악할 일이다.

문제의 경비부대 소대장이던 김훈(金勳)중위 변사사건 수사를 보아도 그렇다.북한군 공작조와 접촉해온 부소대장이 김중위의 직속 부하였는데도 수사관들은 부소대장의 범죄행적을 입에 올리지도 않았다. 북한군 장교출신 귀순자가 북측의 공작내용을 전했는데도 군수사기관이 까맣게 몰랐단 말인가. 그가 귀순한 직후 북측은 그를 돌려보내지 않으면 보복하겠다고 위협했으며 그 열흘 후 김중위가 변시체로 발견됐다. 소대원들 다수가 북측의 공작가능성을 생각했었다는 증언도 나왔다. 그런데도 군 수사기관은 이 점을 도외시했다. 축소 은폐 의혹을 받아도 할 말이 없게 됐다.

일각에서는 북한에 대한 정부의 햇볕정책과 민간의 온정주의가 군대에까지 혼선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우려도 제기했다. 군대의 기본임무를 생각한다면 언어도단이다. 정부가 아무리 유화적이고 화해정책을 추구해도 군의 사명은 흐트러짐없는 정신무장으로 철통같은 국방을 책임지는 데 있다. 이 본령에 어긋나거나 안이한 군간부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중 문책해야 한다.

당국은 경비부대의 대북접촉 실상과 함께 김중위 변사사건을 전면, 그것도 철저하게 재수사해야 한다. 동시에 군수사 당국 이상 고위차원의 진상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김중위 유족과 국회 국방위 진상파악소위가 나서서야 이같이 엄청난 의혹들의 단서가 잡혔다는 점에 대해서도 크게 자성할 일이다. 철저한 규명을 위해 필요하다면 권위있는 합동조사기구 구성도 검토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