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작가 구효서의 소설 ‘깡통따개가 없는 마을’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전업 초기에 나는 전업이란 걸 다음과 같이 생각했었다… 한해에 단편을 (그럴 수는 없겠지만 하여튼) 한 열편 정도 쓴다고 하자. 문예지에 연재도 한다고 하자… 원고료로 따져보자. 가장 많이 주는 계간지 원고료로 계산해도 다 합해 8백만원이다. 일년 열두달 8백만원 가지고 살 수 있어? ’
이 땅의 30, 40대 전업작가들. 올 한해 IMF의 파고를 어떻게 헤쳐나갔을까. 지금 이들이 ‘문제적’인 것은 이들 전업작가의 곤궁한 삶이 문학의 궁핍,문학의 위기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잡문을 전혀 쓰지 않는 순수 전업작가 박상우(40). 그의 올해 수입을 보면 장편소설 선인세(先印稅) 1천만원에, 계간지의 단편 중편 원고료 2백만원 정도. 선인세라는 것도 실은 가불에 불과하다.지난해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 부인의 귀띔이다.
소설가 구효서(40) 윤대녕(36) 김형경(38) 심상대(38), 시인 함민복(36) 이윤학(33) 등 대표적인 전업작가들 모두 사정은 대동소이하다. 한 전업작가는 이렇게 말한다.“계약금이나 선인세로 버텨왔는데 이제 그것도 바닥이 났다. 다음달 생계가 걱정이다. 하루 하루가 겁이 난다. 한동안 글을 쓰지 못하다 얼마전 다시 펜을 들었다. 어쨌든 무언가를 써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품은 즉흥적이 되고 좋은 작품을 위한 재투자도 불가능하다. 마음은 쫓기고 의욕은 떨어진다. 이번 작품은 어떻게 나올지….”
사정이 이렇다보니 문학성 높은 단편 중편 쓰기가 만만치 않다. 작가들이 밀도있는 단편을 쓴다면 보통 한달에 한편. 그것을 문예지에 발표할 경우 원고료는 70만원 내외(2백자 원고지 1장에 5천∼8천원). 게다가 부업이었던 사보(社報)의 원고 청탁도 부쩍 줄었다.
견디다 못해 출판사와 장편소설 계약을 맺고 선인세(7백만원 내외)를 받기도 한다. 눈 앞의 목돈에 끌리는 것이다. 돈은 반년도 못되어 바닥 나지만 소설은 쉽게 완성되지 않는다. 다시 장편 계약을 한다. 악순환이다. 문학성이 뒤로 밀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시인도 마찬가지다. 순수 전업은 아니지만 장석남(33)의 경우 모든 원고료를 합해도 한달 30만원도 되지 않는다.
이 궁핍한 시대에 전업작가들은 할 말은 많지만 말을 삼간다. “그럼 누가 작가 하랬어? 작가는 원래 배고픈 직업이야.” 그리곤 이내 “요즘엔 문제작이 없어”라고 응수하는 독자들 때문이다.
이중의 고통에 시달리는 그들이지만 그래도 전업을 쉽사리 포기할 것 같지는 않다. “이럴 때일수록 긴장감과 자존심을 지켜야 한다”는 박상우의 말처럼.
〈이광표기자〉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