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군과 수시로 접촉해오다 국가보안법위반 혐의로 구속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내 유엔사 소속 한국군 김영훈중사(28)는 2월24일 판문점에서 숨진 채 발견된 김훈(金勳·25·육사52기)중위가 소대장으로 근무하던 소대의 부소대장이었다는 점에서 김중위의 사망원인이 새롭게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판문점 경비대대 소대장으로 근무하던 김중위가 벙커에서 권총에 맞아 숨진 채 발견된 것은 2월24일. 당시 군당국은 즉각 “김중위가 권총으로 머리를 쏴 현장에서 숨졌으며 현재 정확한 자살동기를 조사중”이라고 밝혔다.
이후 군수사당국은 4월29일 ‘타살로 볼만한 결정적 증거가 없다’는 이유를 내세워 “김중위가 권총자살했으며 자살동기는 밝혀지지 않았다”고 공식발표했다.
그러나 김중위의 아버지 김척(金拓·55·육사21기·예비역 육군중장)씨 등 유족들은 사고직후부터 타살됐을 가능성을 주장하며 수사결과에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
군 선후배의 도움으로 사고현장 사진과 수사기록을 열람한 김씨는 △권총에 아들의 지문이 없고 △아들은 오른손잡이임에도 불구하고 왼손에서만 화약이 발견됐고 △탄착점이 아들의 키보다 낮은 곳에서 발견된 점 등 ‘풀리지 않는’ 의문점들을 발견하고 재수사를 요구했다.
그러나 군당국의 반응은 냉담했다. 심지어 김씨는 ‘삼성 장군까지 지낸 사람이 자살로 밝혀진 일을 가지고 군을 모함할 수 있느냐’는 비난까지 들어야 했다. 김씨는 “친한 군 선후배까지 감시당해 군에 평생 몸담은 사람으로서 심한 배신감을 느꼈다”고 당시 심정을 토로하기도 했다.
군당국의 발표에도 불구하고 김중위 사망원인에 대한 의혹은 계속 불거져 나갔다.
김중위 가족의 의뢰로 수사자료를 입수해 정밀분석한 한국계 미국인 뉴욕 주정부 소속 법의학자 루이스 노박사(한국명 노여수)는 9월초 “김중위 머리 속에 생긴 총알의 진행방향은 권총자살 때 생기는 총상의 특성과 일치하지 않았으며 누군가가 그를 숨지게 한뒤 자살로 위장하기 위해 머리에 총을 쏜 것으로 보인다”고 군당국의 수사결과를 반박했다.
결국 육군본부 고등검찰부는 재조사에 착수, 11월27일 재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나 결론은 1차 조사 때와 똑같은 자살이었다.
김중위가 몸담았던 판문점 경비대대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고 타살 동기가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에 ‘격무와 스트레스로 인한 자살’이라는 것이었다.
이후 파문은 국회로까지 번졌다. 국회 국방위원회는 김훈중위 사망진상 파악소위원회(위원장 하경근·河璟根 한나라당 의원)를 구성하고 이달 3일부터 군당국의 수사결과와 유족들의 주장, 부대원들의 진술 등을 청취해왔다. 그러던 중 3일 소위에서 참고인 진술을 통해 김중위의 소대장 시절 부소대장으로 근무했던 김영훈중사가 북한군과 수시로 접촉해온 사실이 드러난 것. 김중사는 3일밤 국군기무사령부에 체포됐다.
한편 김중사의 구속과 함께 그동안 진행돼온 군당국 수사에 대한 의문점들이 새롭게 제기되고 있다.
김중사는 김중위 사망사건 당일 오전10시부터 11시50분까지 소대장실에서 컴퓨터로 워드작업을 했고 11시45분경 소대장실밖으로 나갔다고 군수사당국에 진술했다.
그러나 워드작업을 한 컴퓨터를 점검한 결과 마무리시간이 오전 9시56분인 것으로 새롭게 밝혀져 김중사의 알리바이(현장부재 증명)가 흔들리게 됐다.
벙커안에서 발견된 권총번호도 의문. 원래 김중위 권총번호는 M9 베레타 1140862번인데 현장에서는 1140865번이 발견됐다.
군검찰은 이에 대해 김중위 권총이 2월9일 고장나는 바람에 2월20일 벙커근무에 들어가면서 순번에 따라 김모일병의 권총인 1140865번을 받아갔다고 밝혔다. 그러나 김중위 권총은 이미 수리가 끝나 2월14일부터 19일까지 김중위가 판문점 근무시 착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반면 김중사의 1140863번 권총이 2월19일 고장난 것으로 권총불출대장에 기록돼 있어 김중사가 현장에서 발견된 1140865번 권총을 가져갔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처럼 두차례의 ‘정밀조사’에도 불구하고 납득할 수 없는 의문점이 계속 생기고 있어 군당국의 이 사건 수사에 대한 능력과 의지가 크게 의심받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성동기기자〉espr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