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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빅딜 그후…下]「고용조정」정부원칙 없어 혼란 우려

입력 | 1998-12-10 19:19:00


5대그룹 구조조정에 따른 고용조정의 파장이 해당그룹 뿐만 아니라 협력업체에까지 미치면서 기업 구조조정의 최대 난제로 떠오를 전망이다.

벌써부터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등은 대책기구를 만들고 고용승계 등을 보장받기 위한 투쟁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개별 기업의 고용조정에 개입하거나 고용승계에 대한 어떤 원칙도 표명하지 않고 관망하고 있다. 노사(勞使)는 내년에 어느 때보다 어려운 결정을 끌어내야 할 상황이다.

▼이전과는 다르다〓이번의 5대그룹 고용조정은 지난 1년간 5대그룹이 실시한 고용조정과는 성격이 판이하게 다를 것으로 노동문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재정경제부 노동부 등 관련부처에 따르면 97년말 총63만명이던 5대그룹의 인력은 9월말 현재 57만여명으로 10% 정도 줄었다.

그러나 사회적 여파는 5개은행 퇴출 등에 따른 금융기관 고용조정만큼은 크지 않았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지난 1년간은 개별업체 차원에서 명예퇴직 등을 통해 잡음없이 인력조정을 추진해왔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앞으로는 5대그룹이 계열사를 인수합병 사업맞교환 매각 등을 통해 드러내놓고 정리할 수밖에 없어 이전과는 상황이 다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체 임직원이 10만5천명인 대우그룹의 경우 41개 계열사를 10개로 줄이는 과정에서 △인수합병으로 1만3천명 △분사(分社)로 1만5천명 △매각 청산 등을 통해 1만여명이 각각 정리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삼성그룹도 이미 빅딜이나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방침이 결정된 자동차 항공 종합화학 등에 종사하는 1만5천명의 인력이 일단 고용조정 검토대상에 오를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협력업체가 더 문제〓“삼성자동차 협력업체들은 최근 일손을 놓고 있다. 삼성에만 부품을 공급하도록 했는데 대우로 넘어가면 절반 가량은 퇴출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5대재벌보다 더 심각한 것이 협력업체 종사자들의 고용문제다.”(산업자원부 관계자)

재벌그룹이 대부분의 업종에서 중소부품업체들을 장악하고 있는 우리나라 산업구조에서 재벌의 대대적 고용조정은 중소기업들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다.

민노총 관계자는 “5대그룹 비주력계열사와 빅딜 대상기업의 1차 협력업체만 2천4백개로 추산된다”며 “이중 절반 가량의 업체에서는 대량실직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협력업체뿐만 아니라 가전 및 자동차 대리점, 비주력계열사 판매망들의 대대적인 축소도 잇따를 것으로 보여 이 분야 종사자들 역시 실직 위기에 직면할 전망이라는 것.

▼제2의 현대자동차사태 우려〓대우전자 지방공장 근로자 3천여명은 10일 서울역광장에서 삼성자동차와의 빅딜에 반대하는 시위를 가졌다.

대우전자와 삼성자동차 근로자들은 빅딜이 기정사실화한 이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시위에 나서고 있다.

노동부 관계자는 “현재는 삼성자동차와 대우전자 근로자들만 나서고 있지만 5대재벌이 비주력계열사 종업원들을 밀어붙이기식으로 정리할 경우 현대자동차사태와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고 장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고용승계와 관련한 법적인 장치의 미비에 따른 진통도 예상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유경준(劉京濬)연구위원은 “정부는 고용승계의 법제도적 원칙을 구조조정 유형별로 마련해야 한다”며 “그렇게 하면 일정 기간 갈등이 있을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노사협상을 통해 고용조정문제를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진작 이같은 장치를 마련했어야 했는데 시기가 다소 늦은 감은 있다는 지적이다.

경총의 김영배(金榮培)상무는 “분명한 사실은 고용조정 없이는 정부가 꾀하는 5대그룹 구조조정의 효과를 거둘 수 없다는 점”이라며 “정부가 왔다갔다 하는 자세를 보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현진기자〉witnes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