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金勳·25)중위 사망사건에 대한 군당국의 수사는 자살이라는 초기 예단을 합리화하기 위해 꿰맞추기식으로 진행됐다는 의혹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초동수사의 기본인 현장보존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권총의 주인, 지문채취, 소대원들의 알리바이 등에 대한 수사가 허점 투성이였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한국계 미국인 법의학전문가인 루이스 노(한국명 노여수)박사와 김중위의 아버지 김척(金拓·55)씨 등 유족이 타살 가능성을 제기하며 여러 과학적인 증거들을 제시했지만 수사과정에서 대부분 묵살됐다.
2월 초 귀순한 북한군 변용관상위가 정부합심조사에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병사들에 대한 북한군의 포섭과 접촉 등에 대해 증언했지만 10개월 동안 수사한 군당국은 이를 김중위 사망사건과 연관해 수사하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다.
일부에서는 이 사건을 처음 맡은 미군범죄수사대(CID)가 초기수사를 안이하게 했고 영내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사건화하기보다는 단순사고로 종결하려는 군의 속성이 가세해 초기의 ‘오판’을 그대로 밀고갔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노박사는 “혼자 죽어 있고 총이 옆에 떨어져 있으니까 CID가 곧바로 자살이라는 결론을 내렸고 한국군은 이를 그대로 수용했다”고 지적했다.
▼부실한 초동수사〓CID가 현장에 도착한 것은 국방부가 자살로 공식발표한 2시간 후인 오후4시경이었다. 수사도 하기 전에 사인이 자살로 공표된 것이다.
한국군 1군단 헌병은 현장출입이 거부됐으며 CID의 현장조사가 끝난 뒤 10분간 현장사진만 찍고 돌아가야 했다.
김중위의 시체가 발견된 벙커 내부는 본격적인 수사가 진행되기도 전인 2월26일 페인트칠을 해버려 현장보존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초동수사 단계의 기초에 해당하는 김중위의 지문채취는 사고 이틀 뒤인 26일 영결식장에서 실시됐다. 또 사건 직후 현장에 도착한 한국계 미국인 안모소령이 김중위의 상의 안주머니에서 꺼내간 수첩은 수사의 단서가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공개되지 않고 있다.
▼타살증거 묵살〓자살하는 사람은 십중팔구 총구를 머리에 밀착시키고 쏘는데 김중위의 경우 총구가 머리에서 떨어진 근접사격을 했다. 노박사는 크고 무거운 M9베레타 권총으로 2.5∼5㎝ 떨어져 자신의 머리를 쏘는 것은 인체해부학상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또 김중위의 머리꼭대기에서는 외부충격이 분명한 6㎝ 가량의 혈종이 발견됐고 오른손 손등에는 상처가 있고 왼손으로 방어하려다 생긴 화약흔이 있으며 손목시계 유리가 깨져 있었다.
그러나 군수사당국은 이런 증거들을 채택하지 않은 채 김중위의 옷차림이 흐트러지지 않았고 뚜렷한 반항흔적이 없다며 자살로 결론내렸다.
▼오락가락하는 사망시각〓군은 김중위가 오전11시50분부터 12시20분 사이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했으나 한 전역병은 오전11시20분경 숨진 김중위를 발견했다고 엇갈리는 증언을 했다.
사망시간은 김영훈중사(28)를 비롯한 소대원들의 알리바이와 관련해 반드시 명확히 밝혀져야 할 요소다.
그러나 김중위와 김중사가 사건당일 오전 컴퓨터 작업을 한 시간과 비상사이렌 발령시간, 밥차가 올라온 시간 등에 관한 소대원들의 진술에 꿰맞춰진 흔적이 적지않게 발견되고 있다.
▼권총의 주인〓김중위의 총은 M9 베레타 1140862번인데 사건현장에서는 김상호일병의 권총인 1140865번이 발견됐다. 군검찰은 862번 권총이 수리중이어서 김중위가 2월20일 순번에 따라 865번을 소지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총기수불대장에 김중위의 권총은 14일 이전에 수리가 끝난 반면 부소대장인 김중사의 1140863번 권총이 19일 고장났다. 순번에 따라 865번을 소지해야 할 사람은 김중사였다.
9월23일 김척씨와 2명의 변호인이 육군본부를 방문해 “감식한 총이 김중위의 것이 아니다”고 따지기 전까지 육본검찰부는 이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1군단 헌병대와 육본검찰부는 1,2차 수사에서 총기조회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
또 865번 권총에서 김중위의 지문이 발견되지 않은데 대해 육본검찰부는 기름이 많이 묻어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M9 베레타 권총의 경우 격발하려면 활대를 당겨야 하기 때문에 지문이 묻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총기전문가들의 주장은 일방적으로 무시됐다.
〈윤종구·윤상호·이헌진기자〉jkma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