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국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을 앞둔 97년 7월 정치권에 퍼진 ‘김심(金心)〓이수성(李壽成)후보’라는 소문의 실체는 무엇이었을까.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은 이후보가 97년 2월 말 개각으로 총리직에서 물러나자 신한국당 상임고문으로 임명했다. 이 때부터 이후보가 김심을 업었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대권 도전을 해보라’는 신호라는 것이었다.
김대통령은 기회 있을 때마다 엄정중립을 강조했다. 그러나 김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은 ‘꿈보다 해몽이 더 좋다’는 식으로 왜곡되기도 했다.
신상우(辛相佑)국회부의장의 술회.
“4월 초엔가 청와대에 보고차 들어갔더니 ‘김심은 이전총리’라는 말이 퍼져 있었다. 왜 그런가 물어봤더니 대권주자 첫 TV토론회가 있었는데 김대통령이 비서실에 이전총리의 토론내용을 녹화한 비디오테이프를 가져오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그깟 일로 별 말이 다 나온다 싶었다.”
그러나 이후보측의 기대는 상당히 달랐다. 이후보의 측근이었던 H씨의 주장.
“김대통령이 6월 말 미국 순방중 S그룹 C회장에게 병문안을 가려했다. 그러나 C회장측에서 사양해 친서를 보내 쾌유를 빌었다. 그런데 이 친서에 ‘이수성 지지를 암시하는’ 구절이 있었다. C회장측은 이를 ‘이수성을 도와주라’는 메시지로 받아들이고 이후보측에 거액의 정치자금을 제공하려 했지만 거절당해 결국 돈은 가지 않았다.”
이후보의 착각이었을까. 정발협의 와해와 함께 ‘김심〓이후보’설은 급격하게 수그러들었다. 이후보는 경선 패배 후 11월 초 신한국당을 탈당했다.
그는 현재 평화통일정책자문회의 수석부의장으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