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솝우화 속의 베짱이는 겨울이 오자 개미에게 먹을 것을 구걸했다. 20세기 말에 나타난 디지털 베짱이는 다르다. 개미의 자비를 구하기는 커녕, 타고난 힘을 바탕으로 식량을 갈취한다. 애니메이션 ‘벅스 라이프(Bug’s Life)’속의 폭군 메뚜기(Grasshopper) 호퍼 얘기다.
‘벅스 라이프’의 묘미는 메뚜기의 달라진 위상에만 있지 않다. 개미 무당벌레 풀쐐기 등 곤충들이 알록달록 앙증맞기 짝이 없는 모양으로, 또렷한 성격을 갖고 등장한다.‘토이 스토리’로 3D 컴퓨터애니메이션의 신기원을 이뤘던 픽사(Pixar)와 디즈니가 또한번 손잡고 만든 작품답게 입이 딱 벌어질 만큼 환상적인, 곤충다큐멘터리 ‘마이크로 코스모스’를 뛰어넘는 정교한 세계가 펼쳐진다. 영화가 끝난 다음 그냥 일어서지 말 것. “앗, 실수! 다시 할께요”같은 곤충들의 NG모음이 사람을 자지러지게 만든다.
〈김순덕기자〉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