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뇌물추방운동은 세계적 추세다. 검은 돈의 거래를 막지 않고서는 공정한 국제교역이 불가능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래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를 중심으로 뇌물추방 분위기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정직성과 경쟁력을 갖춘 기업이 존중받는 풍토를 만든다는 취지의 ‘뇌물공여방지를 위한 국제협약안’이 그 구체적 방안이다. 이 협약은 내년부터 시행된다. OECD 가입국인 우리나라도 ‘의무적’ 추진국에 속한다.
이 협약이 OECD 주도로 추진되는 이유는 국제교역 규모가 날로 커지면서 어느 한 나라만 뇌물공여 관행을 규제한다고 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미 지난 10월 이 협약을 비준하는 등 가장 적극적이다. 이 협약의 정신을 잘 이행하는 선진국 기업들이 뒷거래에 의존하려는 개발도상국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손해를 볼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견제의 주대상은 국제시장에서 선진국들과 경합빈도가 많은 수출주도형 중견국가들임이 확실하다. 우리나라가 그 대표적 대상국가에 해당된다. 그런데도 당국이 사안의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걱정이다.
뇌물을 추방하고 투명한 사회를 만드는 것은 외부의 주문과 압력이 없더라도 우리 스스로 서둘러야 할 일이다. 환란의 도화선이 됐던 한보사태는 부패한 정경유착이 얼마나 큰 국가적 손실을 불러오는지 잘 보여준 사례다. 또 뇌물을 주고 값싼 불량 원자재를 사용했다가 무너지고 부서진 건축물이 어디 한 두곳인가. 경제회생을 위해서도 부패근절은 반드시 필요하다. 외국 투자가의 신인도를 높이고 기업의 경쟁력을 살리는 근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OECD협약의 전제조건인 부패방지법 하나 처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오늘 우리의 현실이다.
그런 가운데 최근 일부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뇌물거부를 선언하고 나선 것은 눈여겨볼 만하다. 삼성 LG 한솔그룹 등이 내부적으로 국제기준의 윤리지침을 마련키로 했다는 소식이다. 어차피 뇌물을 공여하는 쪽은 기업이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들의 다짐은 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된다. 부패의 ‘원인제공자’였던 다른 기업들도 본받아야 할 일이다.
이제 뇌물추방문제는 단순한 도덕적 호소차원을 떠났다. 국제기구의 지속적인 감시가 기다리고 있다. 그것도 우리의 관행으로 볼 때 상상을 넘는 높은 차원의 기준이 적용된다. 정부와 정치권은 부패방지법의 제정과 함께 관련 제도를 서둘러 보완하고 강화해야 한다. 부패추방을 위해 사회 조직원 전체를 대상으로 한 범국가적 의식개혁도 요구된다. 차제에 부패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는 계기를 우리 스스로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