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각사각…. 핏물처럼 붉은 조명이 드리워진 무대 위로 여성 영화감독 임순례의 탐스러운 머리칼이 떨어졌다.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숭동 동숭아트홀에서 열린 ‘한국영화 지키기―문화인 연대’행사장.
삭발이 끝난 임감독은 결연한 음성으로 말했다.
“제 머리는 6개월이면 원상회복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에 스크린쿼터(한국영화 의무상영일수)를 지키지 않으면 우리 영화는 다시 회복될 수 없습니다. 뿌리까지 썩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이날 행사는 스크린쿼터 폐지를 요구하는 미국, 축소 움직임을 보이는 정부의 태도에 대항해 문화인의 연대의지를 밝히기 위해 마련됐다.
시인 최영미는 “영화를 독점하려는 것은 우리의 꿈을 독점하려는 것…코카콜라여, 우리의 일상을 독점하는데 만족하지 못해 이제 환상까지 지배하려는가”라고 자작시를 읊으며 목이 메었다.
테너 임웅균은 “앞으로 우리 영화 주제가도 못부르게 될까 걱정된다”며 뜨거운 음성으로 ‘초우’의 주제가를 불렀다. 무용가 이애주교수(서울대)의 춤, 방송인 김종찬 오미영의 ‘스크린폐지 10년후의 가상뉴스’, 유홍준교수(영남대)의 ‘나의 영화답사기’도 이어졌다.
이같은 문화인의 연대와 영화인의 저항에 12일 국민회의는 성명을 발표, “스크린쿼터제는 문화주권 차원에서 반드시 현행대로 유지돼야 하며 한미투자협정의 대상에서 제외돼야 한다”고 천명했다. 문화의 향기가 정치권을 움직인 셈이다. 한 영화인은 “이제 문화의 힘이 경제논리를 물리칠 수 있는지 지켜볼 차례”라고 말했다.
〈김순덕기자〉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