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毒)을 뜻하는 영어 포이즌(poison)은 라틴어로 ‘한모금’을 의미하는 포티오(potio)에서 유래됐다. 술에 탄 독극물 한방울로 독살하던 로마시대의 유행이 언어로 정착된 것이다. 한자어 독(毒)은 여러가지 해석이 있으나 생명있는 것을 없앤다는 생(生)과 무(毋)의 모음글씨라는 설이 유력하다. 포이즌이든 독이든 어원이 생명체를 해치는 의미에서 왔다는 점이 동서양이 같아 흥미롭다.
▼지난 95년부터 한 해의 일본 사회상을 압축한 한자어를 발표해온 일본한자능력검정협회가 올해의 한자로 ‘毒’을 선정해 화제다. 국내에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간사이지방의 한마을 축제에서 카레라이스에 독극물을 투입해 수십명의 사상자를 낸 일이 있다. 여러 사람을 본인도 모르게 보험에 들게 해 놓고 차례로 살해한 독부(毒婦)사건도 일본 사회에 큰 충격을 줘 ‘毒’이 올해의 한자로 선정되도록 하는데 ‘기여’했다는 보도다.
▼우리나라에서 올해의 한자를 뽑는다면 어떤 글자가 적절할까. 국내에서도 아버지가 아들을 독살한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에 ‘毒’도 후보가 될 수는 있겠다. 그러나 단연 ‘풍(風)’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모두를 강타한 ‘환풍(換風)’은 말할 것도 없고 ‘북풍(北風)’의 변종인 ‘총풍(銃風)’에 국세청을 동원해 정치자금을 거둔 ‘세풍(稅風)’까지 몰아쳤기 때문이다.
▼자연의 바람은 순풍(順風)일 경우가 많겠으나 바람직하지 못한 환풍 총풍 세풍 등과 같은 역풍(逆風)은 사회를 어지럽게 만들기만 한다. 얼마 남지 않은 연내에 각종 역풍들을 말끔히 정리하고 새해를 맞았으면 좋겠다. 세기말을 앞둔 내년에는 21세기를 구상하는 미래지향적이고 희망이 가득 담긴 한자들이 신문지면을 장식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임연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