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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혹시 직장왕따?…『조직은 없다』저혼자 룰루랄라

입력 | 1998-12-14 19:12:00


S사 박과장(35)은 오늘도 점심을 혼자 먹는다. 동료들이 그를 피하기 때문. ‘원칙대로 일할 뿐이다. 대충 넘어가는 다른 사람들이 이상하게 본다고 내가 왜?’같은 부서 직원이 눈에 띄지만 눈을 마주치지는 않는다. 박과장을 발견한 최대리(29·여)일행. 박과장과 가능한한 떨어져 앉는다. 최대리는 결재서류를 하루 늦게 냈다가 박과장이 자신의 근무자세에 대해 사장에게 보고한 사실을 알고 난 뒤 박과장을 피하고 있는 것. 일행은 대부분 비슷한 경험을 갖고 있는 동료들.

▼직장왕따▼

직장의 ‘왕따’와 학교의 ‘왕따’는 기본적으로 같은 개념. 동물이 서열을 정하고 우성인자를 퍼뜨리는 과정에서 집단적으로 한 동료를 죽이기도 하는 공격본능을 가진 것처럼 인간에게도 동료를 향한 집단공격의 본능이 있다는 게 진화론자들의 설명. 오스트리아의 행동생물학자 콘라트 로렌츠는 저서 ‘공격성에 대해서’(On Aggression)에서 “오직 생존을 위해 공격성을 발휘하는 동물과 달리 사람은 공격성을 다른 방법으로 해소하거나 정도를 줄일 수 있다”고 설명. 직장 왕따도 공격본능에 의해 생기는 현상으로 보고 원인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다. 독일 루드비히 막시밀리안스대의 베아테 슈스터교수(사회심리학)는 “회사의 경영스타일과 스트레스가 집단 따돌림 현상을 일으키는 중요한 요소”라고 분석한다.

▼왕따가 되는 과정▼

G사의 김차장은 후배와 함께 밥이나 술을 먹으면 자기 몫만 계산한다. 후배 임과장은 “본인은 합리적이라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사소한 것’ 때문에 그는 후배 사이에 왕따로 통한다”고 말한다.

박과장이나 김차장이 왕따가 된 이유는 조직의 평균적 특성(norm)을 어겼기 때문. 원칙을 무시하는 사회에서 원칙을 지키는 사람,더치페이가 정착된 사회에서 혼자 모두 내겠다고 우기는 사람, 회식이 잦은 직장에서 회식에 빠지는 사람 등은 ‘준비된 왕따’. 그래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지 않는 직장이면 사람들은 좀처럼 왕따를 만들지 않는다. 구조조정 연봉제 빅딜 등 스트레스가 ‘생존’을 위협하는 요소가 많은 우리나라는 왕따가 나오기 좋은 환경.

최근 연봉제 직장이 늘면서 ‘능력부족’이 왕따의 한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A연구소의 김모연구원은 최근 새 프로젝트팀을 짜는 과정에서 연구소장에게 면담을 신청했다. 그는 “기존의 프로젝트가 끝나지 않아 새 팀에 낄 수 없다”고 말했지만 실제이유는 새 팀원 명단에 후배 K가 끼어있었기 때문. “연구결과는 성과급과 직결되는 상황이었다. 5명이 한 팀인데 K가 끼면 4명이 일을 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알고 보니 같은 이유로 면담을 신청한 사람이 나 말고 두 명이 더 있었다.”

▼왕따가 조직을 살린다?▼

D사의 황모씨(28·여)는 95년 입사 이후 첫달을 빼고는 동기모임에 나가 본 적이 없다. 동기 모임에서 자신이 주된 화제거리라는 사실을 황씨는 잘 모른다.동기 김모씨(28·여). “그의 ‘공주병’은 ‘씹기 좋은’ 대상이다. 미안하기는 하지만 즐거운 게 사실이다.”덕성여대 심리학과 김미리혜교수는 “왕따를 뺀 나머지는 안도감을 느끼면서 결속력이 강해진다”고 설명. 그러나 강해진 결속력이 ‘팀웍’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삼성생명 사회정신건강연구소 정현희선임연구원. “이 때의 결속력과 응집력은 다시 왕따를 흉보거나 미워하는 데 소모될 뿐이다.”

▼왕따에서 영웅으로▼

컴퓨터 애니메이션영화 ‘벅스 라이프’의 실수투성이 주인공 개미 ‘플릭’은 남들처럼 낱알을 나르는 대신 자신이 발명한 탈곡기로 ‘대량생산’을 하다가 눈총을 받는다. 그러나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로 메뚜기들의 압제에서 개미들을 해방시킨 개미는 플릭. 시대 변화에 따라 왕따가 영웅이 되는 순간.

▼왕따 없인 ‘전구도 없다’▼

왕따로 찍혀 고생하는 학생들과 박과장, 플릭의 공통점은? 셋 다 엄청난 스트레스상황(입시, IMF, 메뚜기의 압제)에 있다는 것. 또 자신과 남들 중 누가 옳은 지 아직 확실치 않다는 것. 확실한 것은? 한 때 왕따였던 플릭 덕분에 개미사회에 평화가 찾아왔으며 플릭과 같은 사람은 역사에 널려있다는 사실. 또 박과장도 전구를 발명한 에디슨이 될 지 모른다는 것.

〈나성엽기자〉newsda@donga.com

[나의 「직장 왕따」지수는?]

①동료들과 사적인 모임을 갖지 않는다.

②직장 동료의 경조사에 자주 참석하지 않는다.

③나를 총애하는 직장상사가 있다.

④직장에서 특별히 좋거나 싫은 사람이 있다.

⑤업무능력이 부족한 편이다.

⑥동료로부터 형광등이나 사오정이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⑦주말에 사적으로 만나는 직장동료가 없다.

⑧평소 생활모습과 직장에서 생활하는 모습이 다르다.

⑨내성적이다.

⑩‘낙하산’을 타고 온 사람이다.

▼채점〓각 항목에 동의하면 1점

▼판정 △4점이상〓왕따‘경보’△2,3점〓왕따‘주의보’△1점이하〓왕따와 무관

(자료:심리공학연구소 최창호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