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주영씨(59). 어린 시절, 그는 우산이 가장 갖고 싶었다. ‘비오는 날의 우산’, 그것처럼 더 절실한 것은 없다. 하지만 그에게는 우산이 없었다. 그래서 여름이면 호박잎이나 연잎을 꺾어 머리에 얹고, 봄이나 가을엔 책보자기로 이마를 가리고 뛰었다. 겨울이 다가오면 비 대신 눈이 내리기만을 빌었다.
그는 지금 무려 다섯 개의 우산을 갖고 있다. 한 번도 쓴 적이 없는 네 개의 우산을 옷장 속에 감춰놓고 지낸다. 그런데도 누가 번듯한 우산을 쓰고 다니는 걸 보면 꼭 묻는다. “그 우산 어디서 샀어요?”
이레에서 창간한 단행본 형식의 월간잡지 ‘작은 이야기’.
누구나 가슴 속엔 혼자만의 사막이 있고 황야가 있다고 했던가. ‘작은 이야기’에는 외롭고 바람부는 들판을 묵묵히 걸어갈 때 멀리서 손짓하는 깃발처럼 위로가 돼주는 이야기가 소복히 담겨있다. 너무도 크고 넓고 바쁜 세상에서 자그맣고 천천히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등불은 작은 집일수록 따스하고 밝게 빛난다 했다. ‘작은 이야기’의 책 갈피갈피에는 반딧불처럼 작지만 소중한 사연들이 빼곡하다. 밤새 두근거리다 새벽에 피어나는 꽃 수련(水蓮) 같은 수줍음과, 서로의 여윈 마음에 불을 지피며 밥 한 끼에도 감사해 하는 겸허함이 느껴지는 그런 이야기.
창간호에서는 인고(忍苦)의 휴머니스트 신영복교수(성공회대)를 만난다. 그 오랜 수형(受刑)생활에도 따뜻한 마음을 잃지 않았던 그가 들려주는 아내 이야기, 가족 이야기.
문명의 거센 바람 앞에서 등불이 사위어 가는 오지(奧地)마을도 찾아 나선다. 강원도 평창의 봉고두니, 강원도 진부의 단임골, 경상북도 영양의 오무마을…. 거기에는 시간의 퇴적층 속에 묻혀버린 화석 같은 추억이 쌓여있다.
동화작가 권정생씨는 소녀가장이었다가 처녀가 되고 이제는 새댁이 된, 아름다운 한 그루 나무 같은 ‘경순이 이야기’를 들려준다.
우연히 아버지의 일기장을 들춰보던 딸이 한 순간, 아버지가 살아왔던 그 가파른 세월이 차올라 눈시울을 적시는 편지도 있다. ‘1960년 5월… 오늘은 비가 왔다. 비를 맞으며 지친 몸을 이끌고 언덕을 오르자니 멀리서 어린 두 여동생이 뛰어오는 것이 보였다. 순간 나는 그들이 너무 예쁘고 반가웠다. 저렇게 뛰는 걸 보니… 오늘은 굶지 않았구나….’
‘작은 이야기’는 어쩌면 그 속에 커다란 참나무를 품고 있는 작은 도토리 같은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그것을 심으면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커다란 참나무 한 그루로 자라, 많은 열매들과 초록 그늘을 만들어 내는.
발행인 고석사장. “자그마한 씨앗 속에는 정말 많은 것이 들어 있어요. 춥고 가난한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작은 이야기의 씨앗을 심어주고 싶었습니다. ‘작은 이야기’는 그런 마음으로 만들었지요….”
〈이기우기자〉keyw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