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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여당, 원칙이 있는가?

입력 | 1998-12-14 19:16:00


여당이 정치현안에 오만하게 대처하고 있다. 여당은 어제 국회 본회의에 교묘하게 불참해 천용택(千容宅)국방장관 해임건의안을 자동폐기시켰다. 얼마 전에는 비리혐의 정치인을 가급적 불구속 기소하도록 김대중(金大中)대통령에게 건의했다. 도대체 여당의 정국운영에 원칙이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여당은 판문점 경비병 대북 접촉이 전(前)정권에서 발생했기 때문에 천장관의 책임을 묻는 것은 잘못이라고 해임 건의안 표결 불참 이유를 설명했다. 이 사건에 국정 조사권을 발동할테니 결과를 지켜보고 해임을 건의해도 늦지 않다고도 말했다. 그러나 해임건의가 옳지 않다면 표결로 부결시키면 될 일이었다. 여당이 내세운 논리는 설득력이 없다. 오히려 연립여당 일각에서 이탈표가 나와 해임건의안이 가결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표결불참에 더 크게 작용한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은 내부사정일 뿐이다. 해임건의안이 적법하게 상정됐으면 표결로 처리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것이 의회주의의 원칙이다. 그것을 제멋대로 무시한 여당의 태도는 무엇으로도 변명될 수 없다.

그동안 여당은 야당의 국회 불참을 줄곧 비난해왔다. 이번에는 여당이 불참했으니 앞으로 야당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야당의 불참은 나쁘고 여당의 불참은 좋다는 법은 어디에도 없다. 실제로 야당은 해임건의안 무산에 따라 정기국회의 남은 일정을 전면 거부하기로 결정했다. 잔여회기 나흘이 뒤죽박죽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런데도 여당은 시급한 규제개혁법안과 민생법안을 단독처리하겠다고 말한다.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시급한 법안 처리의 정당성을 여당 스스로 훼손한 꼴이 됐다.

비리정치인 불구속기소 건의도 그렇다. 보도에 따르면 여권은 ‘정치적 파장’을 고려해 그런 건의를 했다고 한다. 야당이 세풍사건 총풍사건을 정치현안과 연계할 때는 사법절차와 정치는 별개라고 하던 여당으로서 모순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여권은 비리 정치인들을 신속하게 재판하고 의원자격이나 피선거권 박탈로 처리하는 것이 좋겠다고까지 했다. 삼권분립을 위협하는 중대문제다. 검찰수사를 뛰어넘어 법원의 재판에까지 관여하려 했기 때문이다.

범죄혐의자 수사는 불구속이 원칙이다. 그러나 법집행은 공평해야 한다. 훨씬 가벼운 혐의자도 구속하면서 정치인만 불구속한다면 법의 권위가 유지될 턱이 없다. 더구나 정치인 사정(司正)과 정치개혁은 국민적 요구다. 정치권이 정치인 수사에 참견하는 것은 용납될 수 없다. 대통령의 말처럼 수사는 정치권이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다. 검찰은 정치권 기류에 개의하지 말고 법에만 충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