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金泳三)대통령과 이회창(李會昌)총재의 ‘악연(惡緣)’ 때문에 가장 마음고생이 심했던 사람은 강삼재(姜三載)의원이었다.
95년 6·27 지방선거 직후 집권 신한국당 사무총장에 전격 기용된 강의원은 임기 후반의 ‘김심(金心·김대통령의 의중)’에 가장 정통하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김대통령의 직계였다. ‘부자관계나 마찬가지’라는 소리까지 들을 정도였다.
그러나 강총장은 이회창대표가 대선후보로 선출된 직후인 97년 8월 두번째 사무총장직을 맡으면서부터 하루도 마음편한 날이 없었다. 후보경선 때까지는 ‘김심’이 이대표에게 있었던 만큼 큰 갈등은 없었다.
강총장이 내용도 모른 채 ‘김대중 비자금파일’ 폭로의 창구를 맡은 것도 따지고 보면 ‘아직은 김심이 이회창에게 있지 않다는 증거가 없지 않느냐’는 판단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10월22일 이회창총재가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김대통령의 탈당을 요구하자 강총장은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내용도 발표 직전에야 유인물을 전달받고서야 알았다.
다음날 총장직을 내놓고 지역구인 경남 마산에 내려가 칩거에 들어갔다. 사퇴 직전 “김대중 비자금폭로는 이총재 지시로 이뤄졌다”고 밝혀 이총재와 강총장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김대통령이 신한국당을 탈당한 직후인 11월 중순, 강의원이 ‘이회창 신한국당’에 세비 2개월치(1천만원)를 당비로 내자 이총재 진영은 “강총장의 마음은 여전히 이총재에게 있다”며 반겼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강총장은 반(反)이회창의 기수였던 서청원(徐淸源)의원과 거의 매일 연락을 취하며 ‘대안(代案)’을 생각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