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사스인스트루먼트(TI)코리아의 디지털신호처리칩(DSP)솔루션센터에 근무하는 김성실씨(42)의 직장 생활은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럽다.
다른 일에는 전혀 신경쓸 필요 없이 오로지 관심이 있는 분야의 연구에만 전념할 수 있기 때문. 부장급의 지위에 있지만 서류업무나 조직관리같은 일로부터는 완전히 자유롭다. 다른 일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봉급이나 수당이 적은 것도 아니다. 게다가 회사내에서는 TI의 간판제품인 DSP분야의 전문가로 인정받아 직원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고있다.
기술계통에 종사하는 김씨가 이같이 특별 대우를 받는 것은 기술인력만을 위해 별도로 마련한 TI의 기술직 승진체계(Technical Ladder) 덕분. TI코리아의 김명수상무는 “대부분의 기업에서는 기술인력들이 승진과 함께 관리업무에 시달려야 한다”며 “이 제도는 뛰어난 기술 인력이 일반적인 승진코스를 밟지 않더라도 명예와 높은 급여를 받으면서 연구개발에 전력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주는 제도”라고 설명.
승진코스는 부장급의 MGTS(Member of Group Technical Staff)로부터 사장급인 Pr.Fellow까지 모두 6단계. 김성실씨는 이사급인 SMTS(Senior Member of Technical Staff)의 직급을 보유하고 있다.
이 승진코스에 진입하기만 하면 ‘반도체 기술의 장인’으로 인정을 받는다. 그런만큼 심사과정도 엄격하다.
상사나 동료들의 추천을 받은 대상자들은 우선 10인으로 구성된 아시아 기술위원회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그런 다음 전세계 지역 대표자로 구성된 본사 기술위원회의 심사를 받는다. 심사기준은 기술개발 기여도 및 특허보유상황 또는 논문발표 건수 등.
1년에 한차례씩 열리는 심사를 통과하는 사람은 전 세계에서 열 손가락에 꼽을 정도. 또한 희소성을 위해 단계별로 엄격한 비례의 원칙을 적용한다. MGTS는 전체 대상 기술인력의 8.3%로 한정돼있으며 Pr.Fellow는 전세계적으로 48명에 불과하다. 한국지사에는 MGTS 3명, SMTS 2명이 있다.
일단 이 승진코스를 밟기만 하면 급여와 직급이 상향조정된다. 부와 명예를 동시에 거머쥐는 셈. 부사장급인 Fellow의 경우 아무런 부서를 맡지 않지만 부사장 이상의 대우를 받고 ‘장인’으로 존중받는다.
이처럼 진입이 어렵지만 일정 자격을 꾸준히 유지하지 않으면 탈락되기도 한다. 김상무는 “이 승진단계에 든 사람은 근무 시간의 50%를 연구개발에 투자해야 한다”며 “일정 기간 연구 실적이 미비할 경우 심사를 거쳐 직급을 박탈한다”고 설명했다.
TI는 반도체칩을 세계 최초로 개발한 미국 최대의 반도체 업체로 지난해 매출액은 98억달러 규모. 올 한해 기술개발부문에만 11억달러를 투자했다.
김상무는 “기술인력에 대한 투자와 배려가 TI를 세계적 반도체 업체로 성장시킨 배경”이라고 말한다.
〈금동근기자〉go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