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처럼 가지를 감싼 수십만개의 작은 전등이 바람에 춤추듯 하늘거린다. 그리고 그 불꽃나무 사이로 아들의 손을 잡은 부모와 팔짱 낀 연인들이 걷고 있다.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아미가호텔과 역삼동의 리츠칼튼호텔. 1백그루가 넘는 나무 수십만개의 작은 전등 불빛으로 장식됐다. 그리고 사람들의 입소문으로 ‘겨울 밤이 아름다운’곳으로 자리잡았다.
리츠칼튼 호텔의 트리장식은 자연미를 한껏 살렸다. 32만개의 작은 전등과 6백개의 은색 파란색 방울이 높이 11m, 지름 5m의 크리스마스 트리를 장식하고 있다.
주차장 입구쪽에 빽빽히 들어선 70여그루의 소나무 아래에서 하늘을 바라보자. 하늘 대신 별빛처럼 초롱초롱한 수십만개의 작은 불빛이 마치 우주의 한 공간에 서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바람에 흔들리는 불빛의 느낌이 좋아 이곳을 찾는다는 회사원 김승모(金承模·29·경기 고양시 일산구)씨는 “꼭 별이 쏟아지는 숲속에 들어온 느낌이다”라고 감탄했다.
8천개의 작은 등과 2천5백m 길이의 비닐튜브 전구로 장식한 아미가호텔의 트리장식은 ‘장엄한 멋’을 풍긴다. 노란색과 붉은색 두가지 전등이 빚어내는 화려한 느낌이 연말의 풍성함을 전해주었다.
리츠칼튼호텔의 장식이 로비 앞쪽을 아기자기하게 꾸민 것과는 달리 아미가호텔의 장식은 1백여m에 이르는 호텔 건물 전체와 조화를 이루는 형태다. 이 때문에 가까이서 보기보다는 멀리서 조망하는 것이 훨씬 더 좋다. 호텔 앞에 설치된 벤치는 연인들 차지다. 여자친구와 이곳을 찾았다는 회사원 백인탄(白寅灘·30·서울 종로구 평창동)씨는 “공상과학영화에 나오는 미래의 건물에 온듯한 기분”이라며 “여자친구와 다툰 후 울적한 마음을 달래기 좋은 곳”이라고 소개했다.
아쉬운 것은 IMF 경제한파로 인해 두 곳 모두 자정이면 불을 끈다는 것. 11월 한달 내내 트리장식을 했다는 아미가호텔 시설과장 최용정(崔龍楨)씨는 “이런 경제상황에 낭비 아니냐는 지적도 있지만 아름다운 야경이 생활에 찌들어 쓸쓸한 시민들의 마음을 한순간이라도 보듬어줄 수 있다면 가치가 있는 것 아니겠느냐”면서 “이제 서울에도 볼만한 야경이 있다는 말을 듣고 싶다”고 말했다.
〈이완배기자〉roryrer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