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16일 ‘9+3’정상회의에서 ‘동아시아 협력에 관한 비전그룹’의 검토필요성을 제안한 것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한국경제는 물론 세계경제에서 날로 커지는 동아시아의 비중을 주목했기 때문이다.
김대통령이 회의에서 “동아시아의 역내 무역비중은 95년에 49%에서 2010년엔 현재 유럽연합(EU)수준인 60%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며 역내 국가간 외국인투자도 95년에 53.5%나 됐다”고 강조한 것도 같은 취지다.
김대통령은 또 현실적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김대통령은 동아시아에 급속도로 확산된 외환위기를 겪는 과정에서 여러 차례 이 지역 국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문제를 논의할 장이 없다는 점에 대해 아쉬움을 표시했었다.
그러나 김대통령이 비전그룹의 구성을 바로 제안하지 않고 검토필요성을 제안한 데 그친 것은 한국의 최대교역국인 미국 등 역외국가의 경계심을 의식한 것이다.
김대통령의 제안은 마하티르 말레이시아 총리가 제안했으나 미국 등의 반발로 진전이 없는 상태인 동아시아경제협의체(EAEC)설립 제안과 기본적인 취지는 상통하나 접근법은 훨씬 신중하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은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경제문제는 아태경제협력체(APEC)에서 수렴해야 하며 EAEC가 출범하면 아태지역내 인종간 대립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며 한국과 일본에 EAEC 구상의 폐기를 위한 적극적 역할을 요구해왔다. 중국은 이 구상을 적극 지지하고 있다.
이같은 민감한 문제들로 인해 김대통령이 비전그룹의 검토필요성을 제안하기 직전까지 공식수행원들 사이에서 상당한 논란이 계속됐다. 당초 바로 구성을 제안하는 수준까지 논의됐으나 당장의 ‘실익’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 우세해 민간주도의 비전그룹 검토 필요성을 제안하는 수준으로 한발 물러서게 됐다.
〈하노이〓임채청기자·워싱턴〓홍은택특파원〉ccl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