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사설]정치논리로 가는 빅딜

입력 | 1998-12-16 19:08:00


정치논리가 빅딜을 지배하고 있다. 정부가 정치 사회적 파장을 우려해 삼성자동차와 대우전자의 빅딜과정에서 인수재벌에 고용과 생산을 현상유지토록 압력을 가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삼성과 대우가 자발적으로 한 것처럼 포장됐지만 정부의 개입을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무분별한 인력해고를 주장하자는 것이 아니다. 정치논리에 의해 각색되고 퇴색되는 경제개혁을 걱정하는 것이다.

박태영(朴泰榮)산업자원부장관은 삼성 대우 두 그룹이 최대한 현상태를 유지키로 했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양사가 그같은 합의를 발표한다고 예고까지 했다. 그리고 두 기업은 이를 토대로 정상화 대책을 내놓았다. 대통령도 비슷한 어감의 발언을 했다. 현상유지라는 말에는 고용승계 생산 및 설비 그리고 협력업체와의 관계 등이 모두 포함된다. 정부가 재벌의 빅딜이후 경영상 문제까지 직접 관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현상유지를 위해 짊어지고 가야 할 부담을 감안할 때 두 업체가 과연 정상화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기업은 반발하고 나라 안팎에서 정치논리의 지배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정부의 의도대로 일이 진행될 경우 양사의 사업부문 맞교환은 그야말로 소유주체만 바꾸는 꼴이 된다. 그럴 바에야 빅딜은 무엇 때문에 하는가. 구조조정의 목적은 경쟁력 향상에 있다. 불필요한 설비를 제거하고 적정한 인력수급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자는 것이다. 이번 정부의 개입은 그런 차원에서 빅딜의 근본취지에도 어긋나는 일이다. 우려되는 부작용도 한 둘이 아니다. 가장 걱정되는 것이 5대 재벌간에 이미 합의한 여타 빅딜에 미칠 영향이다. 이번 일이 선례가 돼 똑같은 방식의 해결방법이 모두 적용될 수밖에 없다면 재벌개혁은 물건너간다.

기업의 인수합병이 반드시 인력감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선진국의 경우 고용조정 없이 합병에 성공한 사례가 얼마든지 있다. 삼성차와 대우전자의 맞교환에서도 인력조정 없이 소기의 목적이 달성될 수 있다면 그처럼 좋은 일은 없다. 그렇게 되도록 기업이 노력하고 정부가 제도적 지원을 해 주면 된다. 정부가 자칫 전면에 나서게 되면 심각한 후유증을 낳기 쉽다.

재벌의 구조조정은 우리경제 전체의 사활이 걸린 문제다. 반도체를 제외한 6개 부문의 사업조정이 원칙에는 합의됐지만 아직 구체적 실천방안에 대해서는 논의조차 되지 못한 상태다. 말하자면 빅딜은 이제 막 시작한 셈이다. 초장부터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재벌 구조조정을 순수한 경제논리에 의해 풀어나가지 않을 경우 정부는 훗날 책임감당이 어려운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