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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세전후 남성, PC게임으로 스트레스해소 급증

입력 | 1998-12-20 19:15:00


L사 윤대리(32)는 매일 저녁 TV앞에 앉는다. 드라마나 뉴스를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게임을 하기 위해서다. 그는 TV에 연결된 게임기가 만들어낸 3차원 입체영상 안에서 경주용 자동차에 몸을 싣고 시속 3백50㎞의 고속으로 레이스트랙을 돌기 시작한다. “그날 받은 스트레스를 게임으로 풀지 않으면 다음날 일이 잘 되지 않을 정도다.”

▼ 넥타이를 맨 전사들 ▼

IMF한파 이후 국내 게임시장은 침체국면에 접어들었다. 업계에 따르면 IMF이전에 비해 수요가 40%이상 감소. 주 소비자층인 학생들의 주머니가 가벼워진 게 가장 큰 원인이라는 분석. 이러한 게임시장이 최근 30세 전후의 구매력 있는 남성 직장인을 중심으로 재편되는 조짐이다. 용산 전자상가와 테크노마트 등 게임 전문점이 몰려 있는 상가에 최근 PC게임 소프트웨어와 비디오게임기 등을 찾는 ±30대의 발걸음이 꾸준히 늘고 있다는 게 상인들의 설명. 테크노마트의 게임전문점 ‘나우로딩’의 김광연씨. “최근들어 넥타이를 맨 20대 후반과 30대 초반 남성들의 발걸음이 눈에 띄게 늘었다. 이에 따라 제품 진열도 성인 대상 게임을 위주로 하고 있다.”

▼ 가상현실 속으로 ▼

지난해까지도 주말이면 어김 없이 스키장을 찾았던 S사 박모씨(29). 요즘 주말 그가 손에 잡는 것은 스키 폴이 아닌 조이스틱(게임기 조종간). 멀티미디어 평론가 박병호씨. “30세 전후의 직장인들은 그동안 주로 교외로 나가느라고 다른 오락거리에는 관심이 없던 사람들이다. IMF이후에는 소득이 줄면서 집 안에 갇히게 됐고, 전기사용료만으로 즐길 수 있으며 이미 익숙한 PC나 게임기로 손을 뻗고 있는 것이다.”

▼ X세대의 게임 ▼

76년 두 사람이 막대기로 공을 주고 받는 퐁(Pong)게임을 발전시켜 만들어낸 ‘벽돌깨기’, 벽돌깨기를 한 층 더 진화시켜 줄을 서서 침공하는 UFO들을 총으로 맞추는 ‘스페이스 인베이더’(78년)는 젊은 직장인들이 학창시절 ‘오락을 끊겠다’는 반성문을 밥 먹듯 쓰면서도 끊지 못했던 ‘불후의 명작’. ‘인베이더 덕분에 컴퓨터와 친해진 X세대(65∼75년생)가 정보통신 산업을 일으켰다’는 다소 과장된 해석도. X세대는 체질적으로 설명서를 읽지 않고도 액션 시뮬레이션 롤플레잉등 다양한 쟝르의 게임에 임할 ‘자세’가 돼 있는 사람들.

▼ 스트레스해소,지능개발 ▼

T산업의 강모씨(29). “회사에서는 과장이나 부장의 억양만 바뀌어도 가슴이 철렁한다. 불확실성과 스트레스 투성이인 세상에서 원칙에 따라 내 뜻대로 움직일 수 있는 곳은 ‘가상현실’뿐이다. 나쁘게 보면 ‘도피’일 수도 있고….”게임은 스트레스 해소, 도피용일뿐인가? 오산대 곽금주교수(심리학). “성인도 다양한 쟝르의 게임을 통해 순발력과 구성력 지구력 집중력 사고력 창의력등 두뇌의 기능을 지속적으로 훈련시킬 수 있다. 특히 통치자의 입장에서 회사나 국가를 운영하는 전략시뮬레이션게임은 자신감을 키우고 대인관계를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중독성이 문제지만 성인은 자기 통제력이 있기 때문에 우려할 필요는 없다.”

〈나성엽기자〉news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