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고만 싶다는 선생님, 고개숙인 원로 교사, 겁없는 아이들. 이것이 오늘의 학교 현장이다.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잇따른 교권침해 행위는 이미 걱정의 수준을 넘어섰다. 학부모가 교사를 폭행하고, 학생이 선생님의 머리채를 잡아 끌고, 체벌한다고 112에 신고하더니 드디어 경찰이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교사를 연행하는 사태까지 왔다.
제멋대로 버릇없이 행동하는 아이들을 말로만 훈계하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인지 단 하루라도 교단에 서보고 이야기하라고 교사들은 말한다. 가정에서 한두명의 자녀를 두고도 제대로 훈육하지 못하는 학부모가 사오십명 학생을 한 교실에 넣고 가르쳐야만 하는 선생님의 고충을 생각해 보았느냐고 묻고 있는 것이다.
▼ 가정에서 생활지도를 ▼
요즘 아이들은 그 옛날 선생님 말씀이라면 무조건 순종하던 그런 아이가 아니고, 오늘의 부모들은 남의 집 아이들을 울리고 돌아온 자기 자식에게 매를 대던 그 옛날의 부모가 아니다.
미국 일본 한국 3개국 학부모를 대상으로 실시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자녀가 어리면 어릴수록 자유스럽게 키워야 한다는 응답자가 미국 8%, 일본 38%인데 비해 한국은 81%나 되었다. 또 학교에서도 기본적인 예의 범절을 가르쳐야 한다는 응답자가 미국 14%, 일본 10%인데 비해 한국은 40%로 높게 나타났다.
미국 일본의 학부모들은 어린 자식에게 매우 엄격하고 기본적인 생활습관 지도는 가정에서 해야 할 일로 생각하는데 한국 학부모들은 그렇지 못하다. “오냐 오냐”하면서 버릇없이 키워 학교에 보내 놓고 선생님들에게 생활지도까지 부탁하고 있는 형편이다.
우리나라 교사 1인당 학생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최하위 수준으로 이같은 과밀 학급에서는 제대로 된 교육을 하기 어려운데도 위로는 커녕 교원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정책은 계속되고 있다. 일선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교사들은 수업을 했는지, 전쟁을 했는지 모르겠다고 푸념하고 있다.
지금 교권은 끝없이 추락하고 아이들에 대한 선생님들의 사랑은 식어만 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까지 오게 된 원인을 분석해 보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
첫째, 교사들에게 문제가 있음을 인정한다. 이제 교원 자신부터 모범을 보이면서 실추된 교권회복을 위해 피나는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아이들에게 야단은 치되 화를 내서는 안된다. 아이들의 잘못된 행동도 나의 책임이라는 생각으로 가르치는 것이 스승의 자세다.
둘째, 정부의 교원정책에 문제가 있다. 교권침해 사건에 대해서는 교육당국이 상당한 책임을 느껴야 한다. 스승을 존경하는 풍토는 만들지 못할망정 교육행정 당국이 교원을 우습게 보는 정책을 추진하니까 아이들이 따라서 그러는 것이다. 정부는 교원을 교육개혁의 대상이 아닌 교육개혁의 주체로 인정하고 격려해야 한다. 병든 나무는 뽑아내야 한다. 그렇지만 병든 나무가 있다 해서 숲에 불을 지르려고 해서는 안된다.
셋째, 언론에도 많은 문제가 있다. 아이들은 선생님이나 부모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기보다 TV에서 한 말을 더 믿고 따른다.
청소년 문제와 교사에 대한 언론의 지나친 선정적 보도 태도는 지양되어야 한다. TV나 라디오의 청소년 문제 프로그램은 교육적인 방향에서 제작되어야 하고 신문의 교육관련 기사도 사회면에서 문화면 교육면으로 옮겼으면 하는 것이 개인적인 바람이다.
넷째, 자녀교육에 대한 학부모들의 의식에도 많은 문제가 있다. 서양 격언에 ‘매를 아끼면 아이를 버린다’고 했고 ‘자식을 사랑하거든 매를 들라’는 말도 있다. 어느 외국인은 우리나라를 가리켜 나라는 무법천지이고 국민은 염치가 없다고 하면서 무조건 자녀를 감싸는 부끄럼을 모르는 한국의 어머니들을 나무란 적도 있다.
▼ 교사 믿고 교육 맡겨야 ▼
어느 교사가 체벌하기 위해서 교직에 들어온 사람이 있겠는가. 교사는 무대 위의 배우와 같다. 연기가 시원찮다고 야유하고 비난한다 해서 더 잘할 수 있겠는가. 못하더라도 박수를 보내고 칭찬과 격려를 하면 신이 나서 더 잘하려고 할 것이다.
인간교육은 스승에 대한 믿음에서 출발한다. 자식을 보냈으면 선생님을 믿고 그 선생님에게 모든 것을 맡겨야 한다.
김진성(서울 삼성고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