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올 한 해를 무사히 보냈을까?’
오랜만에 대학동창끼리 송년회를 갖기 위해 가벼운 기대감에 들떠 회사를 나선 K씨(30).
하지만 약속장소가 가까워올 수록 설렘보다는 불안감이 무게를 더해온다. 직장인들에게는 전란기처럼 살벌했던 올 한해를 다들 별탈없이 넘겼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걱정했던 대로 약속장소인 서울 신촌의 한 음식점에 모인 사람들은 예년의 절반밖에 되지 않았다.
그래도 10여명의 동창생들은 삼겹살과 소주만을 시켜놓고도 이야기꽃을 피웠다. 새삼스레 김치찌개 하나 시켜놓고 밤새 소주잔을 기울이던 대학시절의 추억도 떠올랐다.
다니던 회사가 부도가 난 뒤 몇개월이 지나도 아직 직장을 구하지 못한 한 친구는 ‘요즘은 집에서 장기휴가중’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공교롭게도 ‘빅딜’대상에 오른 경쟁관계의 대기업에 각각 다니는 두 친구는 애써 서로의 시선을 피했다.
한 친구가 어색한 분위기를 의식해서인지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후배들에 비하면 우리는 나은 편이야. 올해 대학졸업생은 취업조차 못하는데 우리는 적어도 취업 기회는 한번씩 가져봤잖아.”
전같으면 호기롭게 이어질 2차도 생략하고 조촐하게 치러진 망년회가 못내 아쉬운지 동창회장은 일어서서 한마디 했다. “내년에는 전원이 참석해 은사님들 모시고 동창회를 멋있게 치러봅시다.” 우울한 마음으로 친구들과 헤어진 뒤집으로 향하는 K씨의 얼굴 위로 차가운 겨울 바람이 스쳐 지나갔다.
‘내년에는 모두들 밝은 얼굴로 다시 모일 수 있을까….’
〈박윤철기자〉yc9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