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년에 이게 웬 고생이냐.”
칠레의 전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83)에게 98년은 생애 최악의 해였다.
그는 73년부터 90년까지 대통령으로 재임하면서 칠레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죄값’을 치르듯 10월16일 반인류범죄혐의로 런던에서 전격 체포돼 국제재판에 넘겨질까봐 벌벌 떠는 신세가 됐다. 올 초 군 최고사령관직에서 물러나면서 ‘종신 상원’이란 자리를 마련하고 편안히 여생을 보내려던 피노체트. 그의 계획은 스페인의 가르손판사가 국제경찰기구(인터폴)를 통해 영국에 신병인도요청을 함에 따라 깨졌다.
스페인에 이어 스위스 프랑스 벨기에 등 유럽국가들이 일제히 피노체트의 처벌을 요구하고 나서 피노체트는 졸지에 ‘서유럽 공동의 처벌대상’으로 떠올랐다.
피노체트의 운명은 몇차례 반전을 거듭했다. 런던고법이 10월28일 ‘국가원수로서 행한 일에 대해서는 처벌할 수 없다’며 면책특권을 인정해 가슴을 쓸어내렸으나 상원 5인 재판부는 11월25일 고법결정을 뒤집었다.
피노체트는 신병인도절차의 개시여부를 결정하는 잭 스트로 영국 내무장관을 설득하려는 칠레정부의 노력이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해 다시 절망에 빠졌으나 이달 17일 면책특권에 대한 재심리를 요구한 피노체트측 변호인의 청원이 받아들여져 다시 가느다란 희망을 갖게 됐다. 그의 운명은 내년 1월 열릴 재심에서 결정된다.
피노체트의 체포를 계기로 반인류범죄를 저지른 독재자는 언제 어디서든 단죄해야 한다는 국제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이에 따라 프랑스에 머무르고 있는 아이티의 장 클로드 뒤발리에 등 각국 독재자들의 운명에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강수진기자〉sjk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