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은 청색의 네이비블루 코트를 차려 입은 구세군사관과 빨간 자선냄비.
그리고 ‘쩔렁’하며 발길을 붙드는 종소리.
도시의 성탄절은 구세군 자선냄비와 함께 온다.
캐럴소리도 끊긴 거리에 눈마저 내리지 않는다는 우울한 예보.
하지만 70년째 사랑을 모아온 자선냄비는 올해도 어김없이 따끈하게 끓고있다.
부서 송년회 회식비용을 몽땅 들고 나왔다는 회사원, 기름때 묻은 손으로 지폐를 넣고 돌아서는 허름한 잠바차림의 사내, 돼지 저금통에 모인 동전을 고스란히 냄비에 쏟아 붓는 어린이들….
“어려운 때일수록 더 따끈따끈해지는 게 자선냄비 입니다. 지난해는 IMF 한파속에서도 전년 보다 1억4천만원이나 더 많은 13억7천만원이 모금됐습니다. 올해는 13억원이 목표인데 마지막날인 오늘(24일)보니 훨씬 넘을 것 같아요.”(구세군 이재성·李在星정위)
구세군은 1865년 영국 런던에서 창립된 기독교 교회. 자선냄비는 1891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오클랜드 부둣가에 처음 걸렸다. 빈민들과 선박좌초 사고로 생겨난 난민 1천여명을 돕기 위해 고민하던 구세군 사관 조셉 맥피정위. 궁리끝에 거리에 큰 쇠솥을 걸고 “이 국솥을 끓게 합시다”라며 외쳤다. 그게 시초였다.
요즘은 성탄절을 앞두고 매년 전세계 1백5개국에서 구세군 자선냄비가 걸린다.
우리나라는 1928년 서울 명동에 자선냄비가 처음 등장했다. 당시 모금액은 8백60원.
금액은 대체로 행인의 숫자에 비례한다.
지하철 환승역에 있는 백화점 지역이 노른자위. 롯데백화점 본점과 잠실점, 현대백화점 압구정점의 경우 냄비당 하루 2백50만원 가량이 모인다. 서울 명동의 경우 1백20만원, 대학생 타운인 신촌은 40만원 정도. 모금에 얽힌 사연도 많다. 명동냄비에는 13년간 한해도 거르지 않고 1백만원짜리 수표를 넣고 가는 노신사가 있다. 96년엔 서울 강남의 한 냄비에서는 7백만원짜리 도난수표가 발견돼 되찾은 주인이 20만원을 성금으로 낸 적도 있다.
전국 70개 시군구읍에서 1백80개의 자선냄비를 내걸고 종을 울리는 33만명의 사관과 자원봉사자들. “올해도 거액수표를 넣는 사람이 있느냐”는 질문에 “작은 기적을 일으키는 것은 빳빳한 수표가 아니라 때묻은 동전”이라고 대답했다.
〈이진영기자〉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