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세상을 보여주는 창. 올 한해 가장 화제를 모았던 영화를 통해 98년을 읽어보자. 동아일보 영화팀이 화제의 영화와 영화계 이슈 가운데 열가지를 정리했다.》
▼ 타이타닉 ▼
첨단 테크놀러지와 돈(영화 1백년사상 최다제작비인 2억8천만달러)의 완벽한 조화로 만든 20세기말의 상징적 영화. IMF이후 ‘금모으기 운동’과 겹쳐 ‘직배영화 안보기 운동’까지 벌어졌으나 서울에서만 2백29만4천 관객이 몰려 영화사상 최고의 흥행기록을 세웠다. 서울서 나온 수입이 1백25억원, 미국에 간 로열티는 46억원정 도. 전국적 규모로 따지면 이보다 두배가 넘을 듯.
▼ 하나비 ▼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초읽기 문제로 여겨졌던 일본 대중문화 개방. ‘하나비’는 10월20일 정부의 일본 대중문화 개방 조치 발표에 따라 12월5일 일본영화 1호로 개봉됐다. 서울관객이 7만여명으로 “일본영화에 예상했던 만큼의 폭발성은 없다”는 성급한 관측도 나오는 실정. 영화계에서는 “정말 휘발성높은 영화는 다음 개방때 허용될 것”이라며 일본영화 사재기에 열중하고 있다.
▼ 편지와 약속 ▼
멜로영화 강세를 주도한 두 편의 한국영화. ‘편지’(사진)가 세운 서울관객 82만명의 기록을 11월 개봉한 ‘약속’이 깨기로 약속했다는 얘기.
두 영화를 모두 제작한 신씨네의 신철 대표는 영화계 마이더스의 손으로 떠올랐다. IMF를 맞아 울고 싶고, 위로받고 싶은 사람들의 정서를 어루만졌기 때문이라는 분석. 그러나 신파조의 멜로물이 한국영화를 퇴보시킨다는 비판도 만만찮다.
▼ 여고괴담 ▼
교권을 비하시켰다는 이유로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상영금지방법이 없나 찾는 바람에 되레 엄청난 홍보효과를 얻었던 희한한 영화. 교사의 비교육적 폭언, 기합 등이 스크린에 재현돼 “귀신을 통해 대리만족을 할 만큼 우리의 아이들은 이 땅의 교육제도에 지쳐있다”는 여론이 일었다.
올해 체벌 촌지 등을 둘러싼 교육관련 사건 사고가 유난히 많았던 것도 학교귀신의 조화가 아니었을까?
▼ 아름다운 시절 ▼
‘강원도의 힘’ ‘8월의 크리스마스’ ‘스케이트’와 함께 한국영화 최초로 프랑스 칸 영화제에 진출, 한국영화 르네상스를 몰고 온 작품.
일본 도쿄영화제를 비롯, 그리스 미국 프랑스의 영화제에서 21일사이에 네차례나 상을 타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이광모감독은 제작기간 11년동안 ‘독종’소리를 들으며 구도하듯 영화를 만들어내 진정한 의미의 영화작가로 주목받고 있다.
▼ 아마겟돈 ▼
세기말 불안 이미지와 종말의 공포를 밀레니엄 상품으로 만들어낸 할리우드 영화. 소행성과 지구의 충돌을 예고하는 국제천문연맹의 발표와 맞물려 더욱 화제를 모았으나 ‘팍스 아메리카나’의 기상이 또다시 지구를 구해냈다. 크기와 미국영화 직배사의 힘으로 우리 극장가를 밀어붙인 ‘고질라’를 1백30만명대 42만명으로 가볍게 눌러 한여름의 승자로 올라섰다.
▼ 벌거벗은 여자들 ▼
지금까지 남성들의 시각에서 보여지던 여성들의 성을 여성시각에서 다룬 영화가 봇물을 이뤘다.
‘처녀들의 저녁식사’(사진)는 여성의 성욕, 자위행위 등을 대담하게 그려 “섹스에 대해 이보다 더 솔직한 영화는 없다”는 평을 들은 영화. 할리우드 누드모델 출신 이승희가 자신의 무기인 몸을 과감하게 드러낸 ‘물위의 하룻밤’, 뒤늦게 성에 눈뜬 주부의 일탈을 그린 ‘정사’도 화제를 모았다.
▼ 심야영화족(族) 탄생 ▼
주말 밤이면 은밀한 제의(祭儀)에 참여하는 사도(使徒)들이 심야영화제에 몰려들었다.
여성문화예술기획이 ‘한국공포영화축제’를 마련했고 컬트영화의 원조로 꼽히는 ‘로키 호러 픽처 쇼’가 23년만에 한국에 상륙, 새로운 문화체험에 불을 질렀다. 공포영화를 위주로 한 심야영화제가 IMF이후 주머니가 가벼워진 젊은층을 대상으로 밤의 문화를 되살린 셈.
▼ 스크린쿼터 폐지 논란 ▼
외교통상부가 한미통상협상에서 불거진 미국의 스크린쿼터(한국영화 의무상영일수) 폐지 요구에응할움직임을 보이면서 한국영화계가발칵 뒤집혔다.
영화인들의 궐기대회, 한국영화 제작거부 시위가 이어졌고 스크린쿼터사수 범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 문화인연대가 출범했다. 정치권이 영화인들의 논리에 동조하는 반면 외교통산부는 경제 우선의 입장을 완강하게 고수하고 있어 여전히 논란이 분분한 상태.
▼ 영화 완전등급제 임박 ▼
국민회의는 새 정부 공약사항이었던 영화 비디오의 검열제 폐지, 완전등급분류제를 골자로 영상관계법 개정시안을 내놓았다. 음란 폭력 등의 이유로 일반극장에서 상영못했던 영화만 상영하는 등급외 영화전용관 설립이 가능해진다. 등급을 못받아 자진삭제후 재심의를 받아 상영된 ‘크래쉬’같은 영화도 무삭제로 볼 수 있는 셈. 그러나 아직까지 국회가 표류를 거듭함에 따라 영화법 개정여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김순덕기자〉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