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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秘話 문민정부 94]이인제씨 출마선언 뒷얘기

입력 | 1998-12-24 18:56:00


15대 대선이 김대중(金大中)후보의 승리로 끝난 뒤 정치권에서는 ‘일등 공신은 누구’라는 식의 해설들이 난무했다.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DJP연합이 일등공신이라는 해설은 지극히 ‘순진한 해설’이었다. ‘이인제(李仁濟)후보가 일등공신’ ‘일등공신은 김영삼(金泳三)대통령, 이등공신은 이인제후보, 3등공신은 이회창(李會昌)후보’에서부터 ‘일등공신도 이등공신도 이회창’이라는 ‘블랙코미디성 해설’까지 나왔다.

‘만약 이인제가 출마하지 않았다면…’ ‘만약 김영삼대통령이 탈당하지 않았다면…’이라는 식의 ‘가정법’도 많았다.

그 중 잘 알려지지 않은 대선 분수령의 하나.

이회창총재는 후보선출 뒤 김대통령이 주례회동 때마다 “이총재의 지지율이 자꾸 떨어져서 큰 일”이라고 압박하자 “이인제만 잡아주면 지지도는 올라갈 것”이라고 응수했다.

김대통령도 처음에는 이인제전경기지사의 후보 출마를 막으려고 애썼다. 하지만 이전지사는 신한국당 대표자리를 보장하라고 요구했다.

우여곡절 끝에 ‘단독 선대위원장’자리가 제시됐지만 이전지사를 지지하는 초선의원들의 반발로 이전지사는 고심하고 있었다.

이전지사의 공식 출마선언 이틀 전인 97년 9월12일 오전1시. 이전지사 진영의 이용삼(李龍三)의원이 서울 종로구 평창동 이회창총재의 집을 찾았다. 이의원은 “지금 이지사를 만나십시오. 차로 20분이면 됩니다”라며 전격 회동을 독촉했다.

하지만 이총재는 “(청와대와) 얘기가 다 돼있다”며 응하지 않았다. 선대위원장을 주기로 김대통령과 이전지사 사이에 이미 얘기가 끝났는데 무슨 소리냐는 투였다. 이날 두사람의 회동이 이뤄졌다면 대선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