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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변신의 98년, 모든것이 바뀌었다

입력 | 1998-12-28 19:15:00


IMF구제금융과 함께 경제여건의 격변으로 ‘청룡열차를 타듯이’ 보낸 한해였다. 정권교체가 우리들 일상에 가져온 파문들 역시 작지 않았다. 다들 “변한 게 없는 것 같으면서도 저도 모르게 깜짝깜짝 놀랄 때가 있다”고 말한다.

▼시인의 변신 ▼

서울 모경찰서의 보안과 형사인 최모씨(46)는 한달전 KBS의 주말 황금시간대 인기프로인 음악회를 보다 눈을 비볐다. 불과 얼마전까지 ‘국가전복’세력으로 분류돼 옥살이를 하던 시인 박노해가 공영방송 주말 음악회에서 축시를 읊고 있었던 것.

반면 국가안보의 최고책임자였던 권영해(權寧海)전안기부장은 몇년전 박노해가 그랬던 것처럼 푸른 수의(囚衣)차림으로 TV뉴스를 장식하기도 했다.

수십년간 방송 금지곡이었던 ‘상록수’가 정부의 공식홍보 가요로 채택되면서 어느새 ‘아 대한민국’의 자리를 차지했다. 권력의 변화가 삶의 리듬을 뒤흔드는 순간들이었다.

▼뒤바뀌는 음지양지 ▼

10여년전 공기업에서 사기업으로 옮긴 H사의 임원 이모씨(57)는 며칠전 전직장의 호남출신 동료들 모임에서 ‘정권교체의 힘’을 피부로 느꼈다. 전에는 한직으로만 맴돌던 전 동료들이 대거 이사나 전무로 승진했던 것. “아, 나도 남아있었더라면….” 정권교체는 사회 곳곳에서 좋건 나쁘건 물갈이를 이루었다.

그리고 권력에 접근하기 위한 태도의 근본적 변화를 요구했다. 외줄타기에서 겹줄타기로.

▼재벌신화의 종언▼

권력의 향배와는 상관없이 최후의 승자로 남는다던 재벌. 이때문에 ‘권력은 짧지만 재벌은 영원하다’는 말도 나왔지만 이 격언도 항상 맞는 것만 아니었다.

삼성이란 이름만 믿고 SM5가 나오기전부터 삼성자동차카드를 쓰던 소비자들은 최근 자동차사업 빅딜로 대우자동차에 넘어가는 현실을 보고 착잡한 감정을 누를 수 없었다. 올해초까지만 해도 ‘이번 구조조정의 파도만 넘기면…’하고 이를 악물었던 대우전자의 이모차장(36)은 정부주도의 빅딜 결과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누가 재벌을 영원하다 했던가.”

반면 소액주주들을 앞세운 시민운동의 파상공세는 계란으로도 바위가 깨질 수 있음을 보여줬다. 3월 참여연대는 소액주주를 대행해 삼성전자라는 공룡을 상대로 13시간 30분이라는 사상 최장 정기주총시간 기록을 세우며 조목조목 독단경영을 지적했다. 이어 7월에는 제일은행을 상대로 한 소송에서 사상 처음으로승소,한보부실대출에 대한책임으로전경영진이4백억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얻어 냈다.

▼탈이념의 시대▼

정치적 컬러가 대조적이었던 두 집권정당의 제휴는 다양한 파장으로 사회 곳곳을 물들였다.

우선 정부에 대한 우익의 발언권이 상대적으로 약해졌다. 최장집(崔章集)대통령자문위원의 사상논쟁에서 불붙었던 우익단체들의 고함소리가 가지는 메아리도 옛날과 달랐다.

반면 정부와 재야, 정부와 시민단체간에는 종종 불협화음을 빚기도 했지만 일치하는 경우가 많았다. 노사정합의 재벌개혁 인권강조 색깔논쟁에서 방법론은 달랐지만 방향은 일치했다.

▼근거없는 오해들 ▼

지난 가을 내장산으로 단풍여행을 다녀온 고모씨(29)는 호남선 기차들이 ‘경광(京光)특급’으로 바뀌었다는 말을 실감했다. 깨끗한 화장실과 넓은 객실을 갖춘 호남선 무궁화호는 경부선 새마을호 못지않게 느껴졌다.

하지만 철도청은 펄쩍 뛴다. 이미 91년도부터 신형차를 도입하면서 차량편수가 적은 호남선 전라선에 먼저 투입했으며 그것도 정기열차가 모두 신형차로 바뀐 지 오래되었다는 것. 다만 경부선의 경우 차량편수가 많다보니 주말에 한해 구형열차를 투입하고 있을 뿐인데도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청와대에 보고서까지 제출해야 했다며 투덜댄다.

TV에 호남 사투리의 배역들이 범죄인으로 나오는 비율이 낮아지고 경상도 사람들이 악역을 맡는 경우가 늘었다는 것도 심리적 왜곡현상일 뿐이라는 지적. 한 언론사의 조사에 따르면 정권교체 이전에도 영호남 사람들의 극중 역할을 따져보면 악역을 맡는 비율에 큰 차이가 없었으며 이는 정권교체 후에도 마찬가지라는 것.

〈권재현·선대인기자〉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