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왕 죽을 바에는 빨리 죽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는 3일 부총재단과 고문 연석회의에서 국회 529호실을 강제로 뜯고 들어갈 때의 심경을 이렇게 밝혔다.
그는 “우리 당이 이런 일을 하지 않았더라도 어차피 여당은 우리 당을 죽이려고 했을 것”이라며 “빠르게 죽이느냐 아니면 천천히 죽이느냐의 차이밖에 없다고 평소에 생각해왔다”고 덧붙였다.
그의 한 측근은 “이총재는 지난 한해 동생이 구속되고 당소속 의원들이 줄줄이 사정 칼날에 휘둘리는 등 벼랑끝으로 몰려와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계속 밀리다가는 중도 ‘낙마(落馬)’로 정치생명이 끝날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던 이총재에게 이번 사건은 생존차원의 탈출구였다는 것이다.
이총재는 또 강제진입을 미룰 경우 예상되는 당내의 파열음도 우려했다는 전언이다. 농성투쟁이 장기화할 경우에는 당내 결속력이 흐트러질 가능성이 높았고 무엇보다도 ‘연말연시’에 의원들이 장기간 투쟁력을 유지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는 것.
이런 가운데 한나라당은 강제진입 노획물로 첩보문건을 다량 발견해 소기의 목표는 이루었다고 자평했다. 처음 529호실에 불법도청장치가 있다는 등 주장도 했으나 그것을 발견못한 데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안택수(安澤秀)대변인은 “문건으로 안기부의 정치사찰 사실은 분명하게 입증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나라당은 또 강제진입 전 안기부가 중요문건을 다 빼돌렸다며 “설령 529호실에서 아무 것도 발견되지 않았더라도 안기부 요원이 상주했다는 사실자체가 문제”라고 주장했다.
〈김정훈기자〉jng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