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원단(元旦)은 2, 3일이 주말로 이어져 12억 인민이 대연휴에 들어갔다. 그러나 원단으로 불리는 양력설은 춘절(春節)로 불리는 음력설만큼 위세가 대단치는 않다. 지난 연말 중국 친구들과 해를 보내는 자리에서 새해 소망(所望)을 물었다. 한참 생각하더니 이구동성 ‘선티젠캉 공시파차이(身體健康 恭囍發財)’를 연발했다. 건강하고 부자되라고 기원하는 새해 인사인데 간단하지만 뜻이 깊고 구체적이다.
1999년 중국은 어디로 갈까.
개혁개방 21년을 맞는 중국의 행진엔 변함이 없다. 덩샤오핑(鄧小平)이 죽고나면 당장 어찌 될 것이라는 서방 점쟁이들의 시나리오도 시나리오로 그쳤다. 요즘 중국의 전 언론이 ‘백년간 변함없이(1百年不動)’라는 등소평의 논리를 개혁개방 이후의 실적과 더불어 강조하는 것도 변함없는 전진의 실증이다.
백성은 먹는 것으로 하늘을 삼는데(民以食爲天) 이제 굶어 죽지는 않는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식량의 평시 비축량도 국제적인 안정선과 평균을 상회하고 있다. 당장 옷이 없어 헐벗은 사람은 없고 주택은 부족하지만 거리에서나 지하도에서 잠자는 사람은 찾기 어렵다. 집값은 몇 년째 바닥을 기고 있으니 집 살 사람들에겐 좋은 시절이다. 의식주가 이러하니 개혁개방 20년을 평가하는 정치지도자의 목소리엔 자신감이 깔려있다. ‘실천을 통해 이론을 창조하고 역사를 통해 이론을 발전시키자(在實踐創造中進行理論創造, 在歷史進步中 推動理論進步)’. 이념보다는 실용주의가 우선임을 재확인하고 있다.
중국은 향후 3년간 연평균 7∼8%의 경제성장을 이룩하고 아시아경제의 안정을 위해 위안(元)화 평가절하를 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아시아를 휩쓰는 금융한파 속에서도 기죽지 않으려는 이들의 저력은 무엇일까. 그것은 혼자서도 버틸 수 있다는 경제규모와 서서히 부상하는 자국시장의 잠재력에 기초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연말연시의 대목에도 불구하고 시장은 썰렁했으며 때아닌 영상의 겨울 날씨에도 불구하고 상인들의 마음은 더 꽁꽁 얼어붙었다. 백화점이든 일반상점이든 왕창세일로 재고 털기에 급급했다. 한국시장보다는 나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옷보따리를 지고 온 동대문의 김사장은 당장 손익은 잊어버리고 오래 견디는 쪽으로 마음을 바꾸었다고 말한다. 한국에서 투자한 기업들과 개인사업자들도 지난 해의 어려움과 현지의 어려움 속에서 적지않게 손을 들었다. 현재 중국소비시장은 긴 불황으로 기업들이 살얼음을 걷고 있다. 수출업체는 환율의 벽에 갇혀 쉬고 있고 대형 국영기업은 자력갱생의 원칙에 따라 정돈에 들어갔다. 실업자는 늘어나고 각종 사기와 신종범죄로 치안당국엔 비상이 걸렸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중국인 어느 누구도 당황하는 기색이 없다는 점이다. 초조한 것은 오히려 외국 사람들이다.
언제나 이상과 실상은 거리가 있고 경제 원리와 시장의 흐름도 장터에 따라 그 희비가 엇갈리게 마련이다. 세월이 가노라면 음양이 다시 바뀌게 되는 원리를 중국 친구들은 본능적으로 체득하고 있는지 목전의 급박함에도 속마음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대를 이어 산을 옮긴 우공(愚公)의 후손들이어서 인가. 지금 중국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새해 덕담은 우선 오래 견디는 것, 이런 뜻에서 새해 모든이에게 ‘선티젠캉(身體健康)’을 전한다.
오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