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내내 사내는 물만 마신다네
갸름한 손이 천천히 살을 발겨 뼈만 남기면
그 눈빛을 마주하기 어렵다
결가부좌 사내의
마지막 옷을 벗겨,
동안거의 묵언 위로
얇고 검은 빌로드 천의 바람을 덮어주면
밤새 눈 내려,
높은 곳은 구름의 무구(無垢)를 껴안고
낮은 곳은 까마득하게 추락하는
흑백의 주월산
*눈 내려 길이 끊긴 산 속, 거기 은거하는 한 수도자를 생각한다. 그의 침묵을 들으며, 요란했던 우리네 소음의 시대를 생각한다. 시인이 그려낸 담백한 수묵 풍경화 속으로 걸어 들어가면, 놀랍게도 활짝 펼쳐지는 뽀얀 세상. 이제 좀 더 낮고 좀 더 투명한 곳을 응시해야 하리니.
〈이광표기자·시인〉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