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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실에서]노경선/내자식 내가 키운다지만

입력 | 1999-01-05 19:22:00


얼굴에 불만이 가득한 초등학생과 비슷한 표정의 30대 후반의 엄마가 진료실로 들어왔다. 둘은 서로 조금이라도 멀어지려는 듯 소파의 양 끝에 자리잡았다. 엄마는 눈물을 흘리며 아이가 ‘문제아’라고 하소연했고 아이는 무엇인가 중얼거렸다.

아이는 엄마가 진료실을 나가고 나와 단둘이 남게 되자 눈물부터 흘렸다.

엄마의 눈에 아이는 시부모와 남편을 닮아 책임감이란 하나도 없는 문제아였다. 그러나 의사의 눈으론 엄마가 더 문제였다.

어렸을 때부터 지나치게 엄격한 가정에서 자란 그는 아이가 ‘무르기만 한 부계(父系)’를 닮은 행동을 보일 때마다 다그쳤고 아이는 풀이 죽어 매사에 자신없는 행동을 한 것.

정신과를 찾는 아이들 중엔 타고난 기질이 문제인 경우도 있지만 이것 한 가지 때문이라고 못박아버리는 것은 위험하다. 아이의 문제는 부모 때문에 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엄마의 성격과 심리에 이상이 있으면 아이에게 문제가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자폐증이나 선천적 정신지체는 유전적 소인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정신과를 찾는 아이의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엄마가 자신의 처지를 되돌아보고 아이를 대하는 태도를 조금만 고치면 좋아질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위의 경우에도 갈등을 빚고 있는 당사자들을 설득했더니 몇 달 뒤 아이의 자신감이 상당히 회복됐다.

노경선(성균관대의대 강북삼성병원 정신과교수)

※이 칼럼은 전문의가 병원 진료실에서 못다한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잘 알려지지 않은 건강정보를 제공하는 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