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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임연철/臨政 독립공채 상환

입력 | 1999-01-10 19:33:00


지금은 말끔히 복원돼 상하이(上海)를 방문하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참관하는 명소로 변모했지만 10년 전 한중수교 전에 답사해본 마당(馬當)로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는 평범한 중국인 민가에 불과했다. 3층 건물이라지만 한층이 8평밖에 안될 정도로 협소해 이봉창(李奉昌) 윤봉길(尹奉吉)의사의 의거가 계획되는 등 임정이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던 시절(1926∼32)의 청사라고는 믿을 수 없었다.

▽마당로의 임정청사는 임정이 상하이에서 머문 14년중 어느 정도 기반을 잡은 후반기에 마련한 곳이라 그래도 환경이 나았다고 한다. 임정은 1919년 4월 수립된 이래 그해에만 두번을 이사했고 20, 21년에도 각각 이삿짐을 싸야 했다. 중국과 프랑스정부를 통한 일제의 집요한 정치적 압력은 말할 것도 없고 경제적 고초가 얼마나 극심했을지는 상상이 가고도 남는다.

▽이삿짐을 풀기도 전에 다시 싸야 할 만큼 어려웠던 시기에 임정이 발행했던 독립공채중 9천여원(圓)어치가 79년만에 상환됐다는 보도다. 흥사단 미주지부가 정부로부터 받은 상환액이 22만2천달러나 된다니 당시로서도 큰 돈이었을 게 틀림없다. 채권에는 ‘조국이 독립된 후 5∼30년 내에 상환한다’고 돼 있으나 당시로서는 독립운동자금을 헌납하는 것과 다름없는 고귀한 뜻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조국이 독립된 지 50년이 훨씬 지난 시점에서 이뤄졌지만 이번 조치는 국민에 대한 국가의 약속이행이란 점에서 뜻이 깊다.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겠다는 약속을 지킬 때 국민은 국가를 믿고 따르게 된다. 같은 차원에서 본다면 북한 억류 국군포로 송환문제를 비롯해 해외에서 실종된 외교관이나 선원에 대한 끝없는 추적 등 정부가 할 일은 많다.

〈임연철 논설위원〉ynchl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