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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서 살아보니]위기때 나타나는 「묘한 저력」

입력 | 1999-01-11 10:47:00


76년 9월1일 김포공항에 발을 내디딘 이래 한국에서의 생활 23년. 인도가 날 키워준 고향이라면 한국은 나를 성숙시켜준 은인들의 땅이다.

한국과의 오랜 인연은 인도 필라니대학 약학대학원 학생으로 있을 때 맺어졌다. 한국에서 연구원으로 잠시 체류하다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밟을 생각으로 당시 서울대 약대 학장님께 한국 체류를 요청하는 한장의 편지를 보내면서 시작됐다. 학장님께서 선뜻 내 요청을 받아들였고 당시 생화학 분야에서 명성이 높았던 이상섭 교수의 지도를 받으라고 추천해 주셨다. 서울에 온 지 몇 달후 나는 미국행을 포기하고 이교수님 밑에서 박사과정을 밟기로 결심했고 이후 지금까지 한국을 떠나지 않고 있다.

지극히 안정되고 변화가 크지 않은 인도사회에 비교해 당시 한국은 건설붐을 토대로 경제가 급속도로 팽창되고 있었고 경제부흥의 자신감이 넘치는 나라였다. 한국에 오자마자 느꼈던 강한 활력이 젊은 혈기의 내게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나라’라는 강한 충격을 주었고 이 땅에 정착하게 만든 것 같다. 또 인도와 유사하게 전통과 경험을 중시하고 웃어른을 모시는 아름다운 정신적 문화도 한국을 편안하게 느끼게 해주었다. 무엇보다도 나는 기숙사 생활에서 알게 된 친구들과의 인연에 감사한다. 한 가족처럼 대해주었던 주위의 친구들이야말로 한국 생활을 지속하게 하는 가장 큰 힘이 되고 있다.

지난 23년간 한국사회의 급격한 변화를 지켜보면서 한국 사람들에겐 묘한 힘이 있음을 느낀다. 평소엔 느껴지지 않았던 모습들이 국가적 위기나 큰 이벤트가 있을 땐 놀라운 저력을 보여준다. ‘잘 살아보세’로 시작한 경제부흥운동, 88올림픽 때의 시민의식 그리고 최근 외환위기에서 보여준 시민들의 자발적인 금모으기 운동과 같은 모습들은 분명 한국인들의 저력과 잠재력을 느끼게 해주는 부분들이다.

반면 교통질서 등에서 잘 나타나듯 무언가에 쫓기는 듯한 성급한 모습들, 그리고 대인관계에서 상대를 불편하게 하는 이기주의적 측면은 극복해야 할 점들이라고 느껴진다.

나는 한국을 무척 사랑한다. 지금껏 한국에서의 생활은 인생의 가장 보람된 시간들로서 단 한순간도 오늘의 나를 만든 그 결정을 후회해 본 적이 없다.

지금 한국은 분명히 어려운 시기에 놓여있다. 그러나 나는 지난 20여년간 느껴온 한국 사람들의 저력을 믿고 있다. 분명 21세기는 한국인들이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내는 무한한 가능성의 시간들이 될 것이다.

사티엔드라 쿠마르

▼약력 ▼

△55년 인도 라자스탄 출생 △76년 인도 필라니대학 동대학원졸 △76∼81년 서울대 약학과 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81∼96년 대웅제약 상무이사 △96년∼현재 ㈜삼양사 의약사업부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