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천년을 코앞에 둔 20세기의 종장(終章), 21세기를 열어가는 우리 출판계의 화두는 무엇일까. 그것은 진작부터 ‘중심부에서 주변으로’ 밀레니엄의 ‘힘의 이동(移動)’을 짚어냈던 포스트모더니즘의 키워드, 변화와 균형 그리고 다양성이 아닐까.
그러한 경향성을 함께 아우르며 99년 출판시장에 새로운 도전과 대안을 던지는 ‘문화 게릴라’들. 제도권의 문화권력에 대항하는 이들 문화전사(戰士)들은 장르 파괴, 소재 파괴를 통해 작년 한해 허약한 IMF 출판시장을 받혀주었다.
계간 현대사상이 펴낸 ‘지식인 리포트―한국의 지식게릴라’ 특집은 이렇듯 달라지고 있는 문화 지형도를 그리며 ‘길은 끊어지고 게릴라들의 탈주(脫走)는 시작되었다…’고 흥미롭게 표현하고 있다.
가방끈이 길든 짧든, 작가든 재야 연구자든, 문화비평가든 ‘놀새’든, 상아탑주의에 일정한 거리를 두고 독자적인 사유세계를 펼쳐나가는 문화 게릴라들. 아마추어리즘을 무기로 프로페셔널리즘의 한계에 맞서는 ‘카오스의 아이들’. 바야흐로 이들의 장이 열리고 있는 것이다.
‘스트리트 스피리트(Street Spirit)’를 지적 자양분으로 홀로서기를 해온 ‘딴지일보’ 발행인 김어준, 문화경제평론가 김지룡,신세대문화의 기수 이규형 박광수 등의 ‘베스트셀러 행진’. 그리고 강준만 진중권 이진경의 대중적 지적 실험. 여기에 세기말의 새로운 문학장르,팬터지 소설 시장을 개척해온 30대 작가들의 기세가 드높다.
국내 사이버문학의 원조로 꼽히는 ‘퇴마록’의 이우혁은 ‘왜란종결자’에 이어 올해초 퇴마록을 완간하고 ‘어린이 퇴마록’을 내놓는다. ‘드래곤 라자’의 이영도는 새 작품 ‘퓨처 워커’를 선보일 계획.
이밖에 출판동향을 부문별로 살펴본다.
★문학★
90년대 여성작가들을 중심으로 한 사소설(私小說) 류가 크게 퇴조할 듯. 일상과 내면의 줄다리기에 기대는 이들 작품들은 작년 출판시장에서 눈에 띄게 무기력을 드러냈다.
황석영의 새 작품에 문단이 주목하고 있다. 새 천년의 기로에서 동양적 삶의 원형과 가치를 추구하는 그의 소설은 새로운 리얼리즘의 모색이라는 점에서 기대를 모은다.
★사회과학★
지난 세기를 정리하고 새로운 세기를 조망하는 ‘밀레니엄 상품’들이 봇물처럼 터져나올 듯. 이미 해외 출판시장은 밀레니엄의 수문(水門)이 열렸고 국내에서도 ‘굿모닝 밀레니엄’(민음사)등이 출간을 다투고 있다.
80년대 운동권과 90년대의 거품을 지나온 소장파 지식인들의 치열한 지적 성찰과 모색을 담은 저작들도 눈여겨볼만 하다. ‘2000년 이땅에 사는 나는 누구인가’(가제·푸른숲) 등.
★비소설★
경쟁사회에서 잠재력을 계발하고 신장시키자는 ‘플러스 사고’보다는 자연의 흐름에 스스로를 맡기자는 ‘뉴 에이지’ 경향이 두드러질 듯. 이같은 추세는 생태학적 위기의식과 맞물려 공생(共生)과 공동체의 관심영역을 자연과학에서 사회과학으로, 나아가 생활 속의 각론으로 확산시켜 나갈 전망.
〈이기우기자〉keyw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