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지구 종말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특히 성서를 근거로 종말이 다가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것을 믿지는 않지만 괜히 기분이 이상합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주보(1월3일자)에 실린 신자의 편지. 새해벽두부터 사이비종교의 종말론과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 Y2K 컴퓨터 대혼란 등에 근거한 갖가지 종말론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국제종교문제연구소(소장 탁지원)의 조사에 따르면 국내 신흥종교 중 자신을 ‘재림 예수’또는 ‘미륵불’로 칭하고 종말론을 신봉하는 사이비 종교단체는 2백여개에 이른다.
극단적 ‘시한부 종말론’과 이른바 ‘휴거(携擧)소동’은 90년대 들어 이미 여러번 사회문제가 된 바 있다. 이들은 주로 성서의 창세기와 요한계시록 등에 나타난 숫자를 자의적으로 해석해 1999년을 지구 멸망의 해로 바라보고 있다.
그렇다면 개신교 천주교 불교 등 정통 교단이 바라보는 1999년 종말론과 밀레니엄에 대한 시각은 어떠한가.
우선 정통 기독교적 신앙은 예수재림과 종말론을 파멸이 아닌 희망으로 인식한다. 연세대 김균진교수(신학과)는 “죄로 얼룩진 유한한 삶 속에서 죄가 없는 영원한 생명을 동경하는 종말론은 기독교 신앙의 본질”이라며 “본래 종말론의 주제는 세계의 대파멸이 아니라, 하느님이 약속하신 ‘새 하늘 새 땅’의 희망에 대한 믿음”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맥락에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는 4월 세계 석학들을 초청해 2000년대 교회일치와 남북통일, 경제문제 해결하기 위한 장기 방안을 검토하는 국제 세미나를 열 계획.
로마 가톨릭의 교황 요한바오로 2세도 2000년을 종말이 아닌 ‘은총의 대희년(大禧年)’으로 선포했다. 희년은 50년마다 한번씩 돌아오는 기쁨의 해. 노예를 해방시키고 빌린 빚과 땅을 원래의 주인에게 돌려주며 처음으로 돌아가는 해다. 한국 천주교는 예수탄생 3천년기를 맞아 1999년을 대희년 준비의 마지막해인 ‘성부의 해’로 정하고 ‘새날 새 삶 운동’을 펼쳐나가기로 했다.
‘무시무종(無始無終)’의 역사관을 갖고 있는 불교는 밀레니엄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있다. 금강경에는 부처님 사후 56억7천만년 경에 미륵불이 나타나 용화삼회(龍華三會)를 펼친다고 기록돼 있으나 현실적으로 상상이 가지 않는 시간대.
석지명 청계사 주지는 “종말론은 지구 본위,인간 본위의 사상”이라며 “인도 갠지즈강의 모래알만큼이나 많은 구천(九天)세계를 인식하는 불교의 세계관에서는 지구나 인간의 멸망은 티끌에 불과한 것”이라고 말했다. 생(生)이 있으면 멸(滅)이 있고, 멸이 있으면 생이 있듯이 우주차원에서 종말은 새로운 시작일 뿐이라는 것.
〈전승훈기자〉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