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자랑하는 세계 최대의 반도체 생산회사인 삼성반도체. 96년 이 회사의 2만여 사원은 약8조원에 달하는 매출액을 기록했다. 종원업 1인당 매출액은 4억원. 하지만 같은 해 일본의 게임업체인 닌텐도와 세가, 양사의 3천여명 종업원이 올린 매출액은 6조5천억원으로 1인당 매출액이 21억원을 넘었다. 순이익율을 따지지 않더라도 문화산업이 가진 힘이 얼마나 큰 것인지 짐작할 수 있다.
바로 이런 문화산업을 21세기형 국가전략산업으로 키우기 위한 ‘문화헌법’이 탄생했다. 지난 7일 국회를 통과한 ‘문화산업 진흥기본법’이 그것. 국무회의의 의결을 거쳐 대통령이 공포하면 3개월 뒤인 4월 중순부터 효력을 발생한다. 제정배경과 주요 내용, 문제점을 소개한다.
◇제정 배경〓지난해 한국의 문화산업 시장규모는 1백26억달러. 세계 시장의 약 1.02%를 차지한 것으로 문화관광부는 추산하고 있다. 고부가가치 산업인만큼 21세기에는 더욱 각광을 받을 것으로 보이며 생활의 질을 높이는데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그동안에는 주요 전략 산업으로 꼽히지 않아 세제 혹은 금융상의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서비스 혹은 오락 산업의 하나로 간주돼 오히려 많은 규제를 받아 창업이 힘들었고 기반시설도 취약했으며 유통구조 또한 시대에 뒤떨어졌다. 새 정부 들어 ‘지식기반서비스산업’을 강조하면서 문화산업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결과 이런 미비점을 보완하기 위해 이 법이 제정됐다.
◇주요내용
▽문화산업〓문화상품(문화적 요소를 이용해 경제적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유, 무형의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 소비 유통에 관한 산업을 말한다. 여기에는 △출판 인쇄 정기간행물 △영화 음반 비디오 게임물 멀티미디어소프트웨어(정보통신분야는 제외) △방송 광고프로그램 공연 미술 캐릭터 애니메이션 디자인(산업디자인 제외) △문화재 전통의상 음식 등이 포함된다.
▽문화산업진흥기금과 문화전문투자조합 신설〓문화산업관련 종사자에 대한 자금대출과 보증, 저작권 관리, 경영자문 등을 담당할 문화전문 투자조합을 만들 수 있게 됐다. 99년부터 5년에 걸쳐 5천억원(국고 50%)규모의 문화산업진흥기금을 조성한다. 이 기금은 직접 혹은 투자조합을 통해 관련기업의 창업이나 제작, 수출을 돕기 위해 장기 저리 무담보로 대출된다.
▽우수 전통공예품의 지정과 표시〓전통 원료를 전통 기법으로 가공해 만든 제품이나 음식을 우수 전통공예품 또는 식품으로 지정하게 된다. 이를 표시하여 소비를 촉진하려는 뜻에서다. 엉터리로 표시하면 1년이하 징역이나 1천만원이하 벌금을 받게 된다.
▽문화산업단지 조성〓문화산업을 키울 목적으로 만드는 연구개발시설, 교육센터, 테크노마트 등 기반시설을 한 곳에 모아 첨단문화산업단지를 만들 수 있도록 했다. 관계부처 협의를 거쳐 건설교통부장관이 사업승인을 하면 나머지 9개 법상의 복잡한 허가절차는 거치지 않아도 좋다. 단지내 기업은 세제감면혜택을 받게 된다.
▽문화산업진흥위 설치〓문화관광부장관 아래 산업자원부 등 7개 정부 부처 차관과 문화관련인사 등으로 15∼20명의 위원회를 구성, 각종 문화산업정책을 심의한다. 문화산업진흥을 범정부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것이다. 비상설 기구이나 필요한 경우 연구개발기관이나 전문위원을 둘 수 있도록 했다.
◇문제점〓여러가지 내용을 두루 포괄하는 기본법 성격이 강해 앞으로 이를 뒷받침할 시행령 제정 등 후속조치가 잇따라 마련되지 않으면 ‘선언문’이 될 수도 있다. 문화분야 종사자가 피부로 느끼려면 시일이 걸릴 수밖에 없는 실정.
‘문화산업’자체가 이제까지 없던 새로운 분야라 정부 부처간에 업부영역을 놓고 견해 차이가 아직 남아 있다. 법안 심의 때도 문화관광부가 주도적으로 만든 법안에 관해 산업자원부 재정경제부 정보통신부 등에서 이의를 제기해 일부 내용이 바뀌었다. 범정부차원의 협의기구를 구성해 이를 조정토록 했지만 시행과정에서 부처간의 ‘잿밥싸움’이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
〈조헌주기자〉hans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