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판에 건강한 비판이 없다는 것은 어제 오늘 얘기가 아니다. 비평이 실종된 한국 문학. 시집이나 창작집 뒤에 상찬(賞讚)에 가까운 글로 독자들의 감식안을 현혹시키는 것이 지금의 비평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그 침묵의 문학판에서 할 말은 하고야 마는 당찬 소리가 있다. 월간 ‘현대문학’의 ‘죽비소리’. 97년 6월 시작돼 1년반 남짓. ‘죽비소리’에 대한 비판도 있었지만 이제 ‘사랑의 매’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죽비소리’엔 성역이 없다. 중진 신인을 가리지 않는다. 김원일 김주영 김영현 양귀자 구효서 윤대녕 은희경 원재훈 배수아 한강(이상 소설)이기철 정호승 최영미 박서원 장석남(이상 시) 등.
등줄기를 후려치는 죽비소리를 들으면 우리 문학판의 한 단면이 보인다. 우리 문학에서 무엇이 넘치고 무엇이 부족한지 선명하게 드러난다.
‘고결한 정신세계를 노래하는 듯하지만 관념의 소요에 불과하다. 무성한 수사(修辭)의 잎사귀들만이 번쩍거린다’(이기철의 ‘유리의 나날’에 대한 평)‘현란한 수사와 지나친 장식’(윤대녕의 ‘달의 지평선’)‘단순하고 결론이 너무 도식적이다’(양귀자의 ‘모순’)‘중언부언이 많고 어슷비슷한 행태 장면 대화의 반복이 지나치다. 어수선한 기교’(한강의 ‘검은 사슴’)‘진정한 보편성을 찾으려는 진지함이 없다’(배수아의 ‘심야통신’)‘소설가 친구에게 보낸 편지를 모은 것. 편지는 아무리 모아도 편지일 뿐인데 소설가가 썼다고 신작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까’(구효서의 ‘오남리 이야기’)‘그의 외로움에선 삶의 무게나 깊이가 느껴지지 않는다’(정호승의 ‘외로우니까 사람이다’)‘의미나 감정의 질서를 충분히 갖추지 못한 일상적 넋두리가 함부로 펼쳐지고 있다’(최영미의 ‘꿈의 페달을 밟고’)‘대중문화 공간에서 유행하는 규격화된 서정과 감성’(원재훈의 ‘만남’)‘퍼즐처럼 다시 짜맞추어 읽어야 하는 곤혹스런 문장들, 억지부린 듯한 시행’(박서원의 ‘이 완벽한 세계’)….
죽비소리에 걸려든 이 시대의 한국 문학.넘치는 것은 언어의 유희, 감정의 노출이요 부족한 것은 진지함과 고뇌다. 너무 쉽게 쓰여진다는 말이다. 한 작가가 언어 유희, 형식 치장에 빠지다보니 내용상으론 아무런 차이도 없는 작품을 마구 찍어내는 형국이다. 그것이 상업성과 맞물려 시장에서 팔려나가고 평론가는 장단을 맞춘다.
죽비소리에 참여하고 있는 문학평론가 이남호 고려대교수는 “진지함, 건강한 비판이 부족했던 우리 문학에 반성의 기회를 제공한다”고 그 의의를 설명한다.
물론 이 ‘죽비소리’가 언제나 정당하고 객관적이라고 말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칭찬 일변도의 문학판에서 그 허와 실을 짚어내고 문학작품을 읽는 다양한 시각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죽비소리’는 올 한해도 여전히 유효할 것이다.
〈이광표기자〉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