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놓은 중기재정계획은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로 시작된 적자재정의 만성화를 막고 가능한 한 빨리 건전재정을 이룩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재정적자가 고착화되면 적자가 적자를 낳고 또 인플레압력을 가중시키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기 때문이다. 당장의 적자재정은 불가피하지만 재정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지 않도록 미리 계획을 세워 나라살림 규모와 씀씀이를 적절히 조절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정부가 제시한 재정적자 조기탈출 해법이 세입 확대 세출 억제라는 고식적인 방식인 것은 실망스럽다. 2002년까지 조세수입은 연평균 10.5%씩 늘리고 재정규모 증가율은 경상성장률보다 2.4%포인트 낮은 6%대로 묶었다. 그나마 이것이 실천에 옮겨진다는 보장도 없다. 법적 구속력이 없기 때문이다. 자칫 정부의 의지표명에 그칠 공산도 크다.
우선 기획예산위가 밝힌 대로 2006년부터 과연 균형재정을 이룰 수 있을지 의문이다. 올해말 96조원, 2002년말 1백60조원에 이를 국가채무 외에도 정부가 지급보증한 64조원의 금융구조조정채권 중 41조원은 정부가 대신 갚아야 한다는 것이 한국은행의 분석이다. 또 추가로 발행될 천문학적 규모의 기업 금융구조조정채권 부담 또한 엄청날 것이다. 기획예산위의 전망대로 2000년부터 5% 내외의 안정성장궤도에 진입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재정적자문제는 예상보다 훨씬 심각한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중기재정계획은 보다 치밀하고 탄탄하게 짜여져야 한다. 단순히 재정증가율 상한제 도입만으로는 안된다. 무엇보다 작고 효율적인 정부를 만들어 불필요한 세출규모 자체를 줄여야 하며 재정운용의 효율성을 획기적으로 높여야 한다. 현재 진행중인 정부조직평가를 토대로 공공부문의 일대개혁이 있어야 한다. 일반회계의 1.8배나 되는 각종 기금 정비와 정부 산하단체 출연기관의 구조조정과 경영혁신도 더이상 미적거려서는 안된다. 궁극적으로 공공기금은 예산에 통합해야 하며 예산운용의 효율성을 가로막고 있는 특별회계와 목적세도 서둘러 정비할 필요가 있다.
재정적자 감축을 위해서는 세금을 더 많이 걷어야 하겠지만 지금의 조세부담률 19.5%도 결코 낮은 수준이 아니다. 세입 확대보다 세출 삭감쪽에 역점을 두어야 하며 조세형평성을 위해 비과세와 조세감면 대상 축소나 음성 탈루소득에 대한 과세 강화도 지금까지처럼 말만으로 그쳐서는 안된다. 투자우선순위에서 밀리거나 특정분야의 재정지출규모가 줄어드는 일부 부처의 반발을 무마하고 조정하는 것도 문제다. 총선과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이어서 정치권의 민원성 예산요구 압력으로 세출증가 억제목표가 흔들릴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