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어렵고 힘들 때 희망과 용기, 자신감을 불어넣는 일이 정치권의 몫임에도 새해 벽두부터 정치기류는 어둡기만 하다. 여야가 ‘국회 529호실 안기부 문서사건’을 둘러싸고 사생결단식 싸움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정말 정나미가 떨어진다.
도대체 극한대립에서 얻어지는 것은 무엇일까. 극한은 극한을 부를 뿐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모두 피해자가 될 뿐이다. 지금 우리 정치권은 최대 위기에 빠져있다.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새로운 시대정신과 실천강령일 것이다.
정치인의 명분을 반드시 나라와 국민의 이익에 두어야 함에도 지난 1년동안 민생법안의 처리는 불과 22%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법을 만들고 법을 지키는데 솔선수범해야 할 국회가 정쟁만을 일삼는다면 이보다 추한 꼴이 또 어디 있겠는가. 후세들에게 어떻게 비춰질지 걱정이다.
당면한 위기는 심각하고 구조적이다. 정치체질도 과거와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다. 국민의 응어리진 목소리가 무엇인지 잘 알면서도 지나친 집단이기주의 때문에 정치지도층은 잘못을 반복하는 인상이 짙다. 말로만 민생을 떠들 뿐 행동이 뒤따르지 않는다.
서양에서는 정치하는 사람들을 두 가지로 구분한다. 하나는 폴리티션, 다른 하나는 스테이트맨이다. 우리말로 전자는 ‘정치꾼’이요, 후자는 ‘정치가’라는 뜻이다. 재미있는 해석은 폴리티션은 ‘날름거리는 혓바닥을 가진 인간기계’라 정의하고 스테이트맨은 ‘정직하게 정치하는 사람’이다.
이런 이유로 전자는 다음 선거를 생각하고 후자는 다음 세대를 생각한다고 했다. 우리나라 국회의원 중에서 다음 세대를 생각하는 국회의원이 얼마나 될 것인지 궁금하다. 국민이 바라는 21세기의 모습은 오케스트라와 같은 삶의 정착일 것이다. 어느 한 사람이라도 기본을 어기고 제 자리를 지키지 않는다면 조화는 깨진다.
이젠 흥분을 가라앉히고 조용히 우리의 진로를 생각해 볼 때다. 급변하는 사회에서 낡은 틀을 계속한다는 것은 역사적 시간을 지체시킬 뿐이다. 새해야말로 우리 자신들의 의식구조에 진짜 개혁을 일으켜야 한다.
윤산학(경기대 홍보실장·전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