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 저예요.”
“응∼. 아가냐.”
“예. 이제 막 출근했어요. ‘오빠’가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지 않아 혼났어요.”
“어∼. 그래. 술먹었냐.”
“아뇨. 어제 야근하고 늦게 들어왔어요. 오늘은 날씨가 무척 추웠는데도 버스가 제때 도착해 별로 고생 안했어요.”
매일 오전 8시반. 김광배(金光培·61) 박난자(朴蘭子·58)씨 부부의 하루는 며느리 전화와 함께 시작된다. 전날 저녁식사 메뉴부터 아침 출근까지 하루동안 벌어진 일들을 빠짐없이 며느리 김지애(金志愛·27·중앙국제로펌)씨로부터 보고를 받는다. 그리고 오후 8시경. 어김없이 전화통은 또 울린다. 이번엔 ‘하루 마감 인사’.
김씨 부부가 사는 곳은 경기 고양시 덕양구 화정동 은빛마을. 장남인 동원(東園·30·이도츠종합상사㈜)씨 내외가 두 달 전 신방을 차린 샘터마을과는 차로 5분거리.이른바‘한동네 따로가족’이다. “‘함께 살자’는 아들 내외의 요구를 거절했어요. 불편할 것 같아서요. 대신 언제든지 볼 수 있게 가까운 곳에서 살자고 제안했지요.”
하나뿐인 아들과 떨어져 살지만 김씨 부부는 요즘 인생이 즐겁다. 착하고 이쁜 ‘딸’ 한 명을 새로 얻었기 때문.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외동딸 잔디(27)가 ‘아빠를 돌려 달라’고 올케에게 항의할 정도.
지애씨는 “‘사랑하는 아들과 딸 지애에게’라고 적힌 크리스마스 카드를 받았을 때 가슴이 ‘찡’ 했어요”라며 “부족한 것이 많은데 이쁘게 봐주셔서 항상 고마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2월초 직장동료 집들이 때 불편한 몸에도 시어머니 박씨가 직접 구절판을 만들어 온 일을 그는 잊지 못한다.
가까이 살지만 김씨네 가족이 얼굴을 마주하는 시간은 1주일에 한번 꼴. 동원씨 부부가 맞벌이를 하기 때문에 평일 시간 내기 힘들기 때문. 기독교 가족인 이들은 일요일 저녁 만큼은 모여 인근 교회에 간다.
〈이호갑기자〉gd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