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프를 미끄러지며 눈보라를 일으키면 ‘물찬 제비’, 슬로프 아래서 다시 보면 ‘나는 돈가스’.
1m93, 1백56㎏의 ‘왕눈이’ 염원준(23). 그는 요즘 ‘모래밭의 천하장사’가 아니라 ‘눈밭의 제왕’이다.
깎아지른 설원을 마음대로 누비는 그의 모습은 전문 선수 못지 않다. 지난해 12월말 한 통신회사가 연 스노보드 대회에선 상까지 탔다.
그의 실력을 알 수 있는 질문 하나. 바로 이달 초에 있었던 일이다.
“몸을 풀려고 중상급자 슬로프를 탔는데 햇빛에 눈이 부셔 앞이 안 보였어요. 그런데 코 앞에서 한 아주머니가 갑자기 일어나잖아요. 스노보드를 확 틀었기에 망정이지…. 다행히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1백56㎏의 거구가 총알같은 스피드로 50㎏ 남짓한 아주머니를 덮쳤더라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눈이 많은 강원 평창군 진부면 출신인 그는 어릴 때부터 스키를 즐겼다. 아버지 돈철씨(46)도 진부고 선수 출신이라 스키와는 인연이 깊다.
스노보드 탈 때는 모르지만 돌아서면 그의 마음은 무겁다. 지난해 동성이 해체되는 바람에 염원준은 지금 ‘백수’.
그는 씨름을 계속하기 위해 스노보드를 탄다. “몸이 크면 순발력이 떨어지죠. 중심이동도 늦어 상대가 흔들면 그냥 무너집니다.” 스노보드는 회전이 많아 좌우 이동 연습엔 최고라는 게 그의 설명.
97충주, 밀양장사 연속 2위에 오른 유망주 모래판의 염원준. 지금 그의 몸은 눈밭에 있지만 마음은 모래밭에 가있다.
〈김호성기자〉ks10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