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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홍찬식/이문열과 이산가족의 恨

입력 | 1999-01-17 19:11:00


예술을 감상하는 요령을 두고 전문가들은 “이것 저것 따지지 말고 있는그대로 느끼라”고 주문한다. 일리있는 말이지만 완벽하게 맞는 표현은 아니다. 작품 하나하나에는 작가의 삶이 농밀하게 녹아 있다. 무작정 느끼기에 앞서 작가의 인생을 알아야 예술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예술은 아는 만큼 느낄 수 있고 느낀 만큼 보인다’는 말이 설득력을 갖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국내 화단에는 유난히 실향민 화가가 많다.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도 상당수다. 이들의 작품에는 공통된 주제가 있다. 고향, 어린 시절, 가족 등이 그것이다. 이런 주제에 집착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고향에 갈 수 없는 한(恨) 때문이리라. 작가 이문열(李文烈)씨는 이와 반대로 부친의 월북으로 이산가족이 된 경우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영웅시대’ ‘변경’같은 작품을 쓰게 만든 원동력이었다.

▽이씨가 최근 생존사실이 확인된 북녘의 아버지에게 편지를 썼다.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에게도 부친을 만나게 해달라고 호소하는 편지를 썼다. 담담하게 써내려 간 내용이지만 이산가족 모두의 심금을 울리는 편지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씨는 가족의 생사조차 모르는 다른 이산가족과 비교할 때 그래도 운이 좋은 편일지 모른다.

▽이산가족 문제는 이제 절박한 과제다. 고령에 접어든 이들의 나이 때문이다. 당국자들도 이런 상황을 모를 리 없겠지만 이산가족 입장에서는 아무리 기다려도 진전이 없으니 그 피맺힌 한을 어찌할 것인가. 이 와중에 북한이 거액의 달러를 받고 이산가족을 만나게 해준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런 식으로 처리할 문제는 결코 아니다. 이씨의 편지가 이산가족 상봉의 막힌 길을 뚫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홍찬식 논설위원〉chansi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