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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추적/공직사회의파벌]정권은 바뀌어도 학맥은 영원?

입력 | 1999-01-18 19:32:00


《어느 조직이나 구성원들은 서로 여러 인연을 바탕으로 자연스레 얽히게 마련이다. 고향 학교 군대 사회경력…. 그 작은 인연을 바탕으로 서로 가까워지고 친목을 도모하는 ‘연줄 문화’는 어쩌면 당연한 현상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정 고교의 지배는 용납하지 않겠다’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발언이후 관가는 안팎의 인맥 학맥 상황을 점검하느라 어수선하다. 지연(地緣) 학연(學緣)이 자연스러운 친목의 선을 넘어 ‘패거리 문화’, 심지어 일부에선 ‘파벌주의’양상으로까지 악화돼 온게 우리 공직 사회의 안타까운 현실이기 때문이다. 특정 지역 학교 출신이 요직을 독점하고, 선후배간에 밀어주고 당겨주며 정보를 독점하고, 그 과정에서 정부 조직내에 보이지 않는 인(人)의 장벽을 만들고…. 김대통령 발언의 정치적 속뜻이 무엇이든간에 이번 파문을 우리 공직사회의 뿌리깊은 지연 학연주의를 반성하고 공평한 인사관리의 문을 여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현정부 들어 공직사회내의 지연 학연주의는 김영삼(金泳三)정권에 비해 어떻게 바뀌었는지, 고위직 관료들의 출신 지역 학교 분포는 어떠한지, 패거리 문화가 정부 조직에 어떤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파헤쳐봤다.》

검정고시 출신인 김모과장. 공무원이 된 후 20여년간 출신 고교와 지역을 축으로 똘똘 뭉친 공직사회의 뿌리깊은 ‘패거리 문화’에 치여 숱한 설움을 겪어야했다.

“조직내 ‘파벌’의 힘이 가장 극명히 드러나는 것은 역시 인사철이에요. 몇몇 ‘파벌’은 아예 평소 매월 월급에서 기금을 거두더군요. 국장은 얼마, 그 밑은 얼마 그런식이에요. 그렇게 모은 기금이 평소 길흉사에 쓰이다가 인사철이 되면 진짜 힘을 나타내더군요.”

인사 이동 대상자가 직접 뛰는 경우는 드물다. 인사결정라인에 있는 간부들과 선이 닿는 사람을 주자(走者)로 선정해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 내부에서 철저히 상부상조가 이뤄지는 것. 인사운동에 드는 비용은 기금에서 지원해주고 나중에 인사 당사자가 기금에 다시 채워넣는다.

“그간 정권이 다섯차례 바뀌었지만 조직내 ‘파벌’은 없어질 줄을 몰라요. 다만 ‘파벌’상호간 힘의 우열만 변화할 뿐….”

‘파벌’이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수차례 체험했다.

“중앙예산을 보조해 지방에 기관을 짓는 사업을 추진할 때였어요. 도마다 서로 자기네 지역에 많이 유치하려고 나섰지요. 그런데 당시 주무 국장 과장 사무관이 모두 동향 동창이었지요. 결국 노골적으로 자기네 출신 지역쪽에 유리한 방향으로 지침을 만들더군요.”

김씨의 증언처럼 정부 조직 곳곳에서 횡행하고 있는 ‘패거리 문화’는 새 정부 출범 후에도 좀처럼 가라앉을 줄 모르고 있다. 오히려 더 기승을 부리고 있는 감마저 있다.

정부 제1종합청사에 근무하는 한 간부는 “현정부 들어 밖으로 드러나는 ‘파벌’은 줄어든 것 같지만 물밑으로는 더욱 심각해졌다”고 말했다.

외형상의 변화라면 호남출신 공무원이 대거 약진했다는 것. 이에 대해서는 “그동안 한쪽으로 지나치게 기울었던 추(錘)가 균형을 회복하고 있는 과정”이라는 해석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잡음은 그칠줄 모른다.

지난해 인사에서 장관의 고교 후배가 대거 국장급 자리를 차지한 과천의 한 경제부처. 한 간부는 “지난번 인사 후 그들이 부처내의 ‘오피니언 리더’가 돼 버렸다”며 “자기들끼리 아예 따로 모여 중요 정책을 논의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12일 단행된 재정경제부의 과장급 인사도 적지 않은 구설수에 올랐다. 핵심 부서인 어느 국 5개 과의 과장이 모두 특정고 출신으로 채워진 것. 또 이 학교 출신 고위간부가 자리를 옮기면서 고교 후배를 실무과장으로 데리고 가 눈총을 사기도 했다. 이 부처의 한 관계자는 “충분히 능력을 갖춘 사람이 많은데도 금융 관련 요직은 대부분 이 학교 출신이 독식해 왔다”고 분개했다. 이날은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특정고교의 파벌문제를 국무회의에서 지적한 날이었다.

공직내 ‘파벌’들은 드러내놓고 활동하지 않는다. 대신 모임내 최상급자의 일정에 맞춰 수시로 은밀히 모여 인사에 관한 고급 정보를 공유한다. 과천 부처의 경우 강남이나 사당동에 모인다. 이로 인해 부처 내부에 보이지 않는 벽을 만들고 부서간 정책협조나 의견교환도 어렵게 만든다.

경제부처의 한 사무관은 “특정 지역이나 고교 출신의 목소리가 높아지면 간부들 사이에서 이들에게 줄을 대거나 정반대로 아예 정책 결정에 무관심해지는 극단적인 양상이 대두된다”고 말했다.

패거리 문화는 부인들까지도 묶는다. 서로 출신지역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남편의 향우회 못지않은 결속력을 과시하는 모임이 한둘이 아니다. 사회생활에서의 각종 인연을 바탕으로 한 파벌도 강하다.

89년에 한 사무관은 군시절 모셨던 상관이 장관으로 오자 그 인연을 믿고 현금을 넣은 마대자루를 들고 장관집을 찾아가 서기관 승진을 부탁했다가 망신을 당한 일도 있다.

경제부처의 다른 사무관은 “조직내의 끼리끼리 행태를 보노라면 우리 정부 조직이 ‘머리는 21세기로 접어들고 있는데 꼬리는 아직도 19세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공룡’처럼 여겨진다”고 개탄했다.

기획예산위원회 김태겸(金泰謙)행정개혁단장은 “공직사회의 파벌문화 해소 방안을 연구했지만 결국 제도적으로 뾰족한 해결책을 찾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올 상반기 중에 고위직을 민간에 개방하고 중앙인사위원회 제도를 도입하면 적지 않은 변화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